다크 시티 Dark City (1998) by 멧가비


영화 속 도시의 시민들에겐 두 가지가 없다. 첫째 '진짜 기억'이 없고, 둘째 '공간 지각'이 없다. 그들의 기억과 사는 곳에 대한 지각은 그들이 자는 동안 모두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바뀌었음 조차 알지 못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대머리 외계인들에게 영화 속 세계관은 일종의 샌드박스(sand box) 쯤 된다. 검게 덩어리지고 해가 뜨지 않는 도시를 시뮬레이터 삼아 실험하는 외계인들은 시민들을 사육하지도 않고 지배하지도 않는다. 그저 실험이라는 이름의 유희를 멈추지 않을 뿐이다.


이 세계관에 혼자 대머리들의 지배를 벗어나 혼란을 자각한 남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주인공인 루퍼스 스웰. 루퍼스는 자신의 기억이 가짜인 것을 깨닫고 심지어 대머리들과 동등한 초능력까지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다른 장르에 빗대어 말하면, 어느 날 전뇌공간에서 AI 한 개체가 자아를 갖고 인간 유저들과 동등해져 버린 셈이다. 어떤 면에선 [버추오시티]의 다크 판타지적 변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시민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읽는 것이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영화 속 시민들의 모습에서, 진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무감각하게 대응할 뿐인 현대 도시 생활, 투표하지 않는 자들을 떠올린다. 반대로 주인공 루퍼스의 진짜 초능력은 세상을 통제하는 손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기는지 인지하고 그에 정확히 대응하는 것 말이다.


위정자들이 사탕처럼 내미는 '쉘비치'는 결국 존재하지 않았다. 거짓 약속에 현혹되지 말고, 눈을 떠 옥석을 가려내면 자신의 손으로 쉘비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바로 영화의 결말이지 않을까.



마치 [에일리언]처럼, 작품 속 고찰이나 주제 의식 등을 차치하더라도, 그로데스크한 비주얼만으로도 압도되는 "그림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자칫 허풍선이같을 수도 있는 이야기에 좋은 배우들이 질감을 부여한다. 윌리엄 허트와 키퍼 서덜랜드는 가뜩이나 어두운 이야기에 한층 묵직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어딘가 늘 불안해 보이는 미인상인 제니퍼 코넬리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대안이 없을 만큼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연출 알렉스 프로야스
각본 알렉스 프로야스, 데이빗 S. 고이어
미술 리처드 홉스, 미쉘 맥거헤이
프로덕션디자인 조지 리들, 패트릭 타토폴로스



덧글

  • 루트 2016/12/09 01:28 #

    이것도 그렇고 아이로봇에서 느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밤을 그릴때 가장 최고의 비주얼을 뽑아낸다는 느낌이 들어요.
  • 멧가비 2016/12/09 15:50 #

    크로우부터 시작해서, 초기엔 굉장한 비주얼리스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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