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I, Robot (2004) by 멧가비


윌 스미스가 연기한 델 스푸너는 로봇 혐오자로서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살인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NS-5라는 신기종 로봇을 용의자로 지목하는데, 로봇을 살인죄로 기소하려면 인간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을 그저 기계로 간주하면 그것은 살인이 아닌 산업재해가 된다. 영화는 로봇의 감정과 자유의지는 인간의 것과 같은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극중 인물은 수전은 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로봇을 미워하느냐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반대로 물을 일이다. 왜 그렇게 로봇을 믿는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고안한 '로봇 3원칙'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세계관이다. 하지만 그건 곧 인간들 자신에 대한 과신과 다를 바 없다. 로봇이 완벽할 거라는 믿음은 곧 인간이 그들 스스로의 테크놀러지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개에서 알 수 있듯, 타이트하게 짜여진 시스템은 작은 균열이 곧 파국을 부른다. 기계에게는 자정 작용이 없다.


극중 델을 제외한 인물들이 기계를 대하는 태도는 흡사 종교에 대한 광신과도 겹쳐 보인다. 눈에 보이는 증거 대신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 눈 먼 신뢰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모순이 있다. 기계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인간이 신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 속 사람들은 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이룩한 테크놀러지, 기계 문명이라는 또 다른 종교를 맹신하는 셈이다.


NS-5 제품군 중 감정을 지녀 "유니크하다"고 평가 받는 써니에겐 인간과 같은 감정 매커니즘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영화에서는 '고스트'라고 부르는데, 이는 [공각기동대]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코드들이 무작위로 결합되어 발생하는 일련의 의외성을 말한다. 인간으로 치면 불가측성 혹은 자유의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로봇의 성질은 로봇 진화 이론으로까지 발전한다.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자신의 논문에 실린 그래프의 한 부분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 명명한 바 있다. 말하자면, 로봇이(혹은 인간을 지향한 다른 무언가가) 인간을 닮아갈 수록 오히려 거부감과 위화감,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효과에 대한 것이다. NS-5 기종들은 구형과 달리 로봇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달고 있어 creepy한 느낌을 준다. 특히 써니는 인간의 감정에 호기심을 갖고 인간의 제스처를 흉내내어 위화감을 자아내기도 하는 등, 로봇이 점점 인간을 닮아가는 정서적 불쾌한 골짜기에 대한 묘사가 좋다.


영화는 많이 아쉽다. 로봇의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은 언급만 되는 수준이며 캐릭터의 묘사가 얕고 건성이어서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하드보일드의 영역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늘 악몽에 시달리며 잘 때도 권총을 쥐고 잘 정도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델 스푸너의 묘사가 조금 더 입체적이지 못한 채 그저 윌 스미스의 액션 활극에만 만족하는 듯 하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내면 묘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밑도 끝도 없이 말이 안 통하는 멍청이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연출 알렉스 프로야스
각본 아키바 골즈먼
원안 아이작 아시모프 (단편집 I, Robot, 1950)



덧글

  • 잠본이 2016/12/16 00:24 #

    좀 개그인건 원래 각본가는 아시모프와 상관없이 그냥 로봇 살인사건을 다룬 실내 추리극(...)을 쓰고 싶었는데 영화사에서 스케일을 팍팍 키우고 권리분쟁 날까봐 일부러 아시모프 작품의 옵션을 사와서 제목하고 로봇 3원칙하고 여주인공 이름만 갖다붙인 결과물이 저거라는 거죠(...) 덕분에 물건너 팬들은 엄청 싫어하는 모양
  • 멧가비 2016/12/16 16:29 #

    팬이라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죠. 각색이 종교적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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