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레인 Black Rain (1989) by 멧가비


뉴욕 형사 닉과 찰리는 백주에 공공 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보는 야쿠자 구미쵸 사토를 체포하지만 윗선의 압력에 일본으로 넘기게 된다. 오사카 경시청에 인계해야 할 사토를 야쿠자들에게 넘긴 실책, 닉과 찰리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관할서 반장 마츠모토 마사히로와 협력하게 된다. [48시간], [리설 웨폰]의 계보를 잇는 다인종 형사 버디 무비 중에서도 리들리 스콧 특유의 미장센으로 특히 유명한 하드보일드 걸작.


영화는 한없이 진지한데 꽤 웃음이 터지는 영화 외적 포인트들이 있다. 감독의 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무척이나 인상깊었던 인테리어들이 너무 당당하게 재활용되는 장면들은 포착한 사람들만 웃을 수 있는 부분일텐데, 마치 괴수 수트를 재활용하는 일본 TV 특촬물의 관행이 생각나기도 한다. 조금 심하면 '저기 저 스모그도 혹시 쓰다 남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재미있다.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의 쌍둥이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세트의 재활용만이 아닌, 그 미장센들이 주는 정서가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늘 진 공기를 하얗게 수놓는 스모그, 축축한 길바닥과 낙오자들. [블레이드 러너] 속 2019년 LA는 미래의 미국에 관한 불안감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오사카는 "그 LA"와 정확히 닮아있다.


스콧은 일본의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관서 제1의 도시인 오사카(大阪)의 야경에 인적을 지우고 매캐한 스모그와 습기를 새로 그려넣는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블레이드 러너]가 주는 불안감을 상기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장치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자체적인 문제 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불안요소가 바로 당시의 일본이었을테니 말이다. 이 영화는 [다이 하드]에 이어 또 한번,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물론 모든 해석이 무의미하게도, 스콧 본인의 취향에 제일 가깝긴 할 것이다. 미래의 우주와 LA를 자기 취향으로 희뿌옇게 개조해봤으니 이번엔 얄미운 일본도 한 번? 이라는 가벼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


당시 나이 쉰을 목전에 둔 마이클 더글라스의 Badass 연기는 뭔가 밑도 끝도 없이 멋있기도 하거니와, 탐정 캐릭터가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마츠다 유사쿠가 역으로 패악스러운 야쿠자 연기를 인상깊게 한 이 영화를 유작으로 남긴 점은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요즘 세대에게 마츠다 유사쿠가 만화 '원피스' 때문에 더 유명한 점은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기묘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존나 남자 영화.



연출 리들리 스콧
각본 크레이그 볼로틴, 워렌 루이스
촬영 얀 드봉



덧글

  • 나이브스 2016/12/14 14:43 #

    그러고 보니 정말 옛날 영화만 보면...

    왜 이리 하수구에서 연기가 피어나는지 의구심이 들었죠.

    일본 고도 성장과 일본이 미국 경제를 위협한다란 내용을 담은 영화 중엔

    '떠오르는 태양'도 있었죠.
  • 멧가비 2016/12/14 16:42 #

    혹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옛날 영화를 많이 보신 건 아닐까요.
  • 나이브스 2016/12/14 18:32 #

    그러고 보니 뉴욕 배경이겠네요.
  • 포스21 2016/12/14 18:36 #

    블랙레인이라... 생소하긴 하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한번 vod 라도 보고 싶네요
  • 멧가비 2016/12/16 16:33 #

    저도 본지가 오래 돼서 IPTV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풀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닛코 2016/12/15 20:35 #

    어렸을 때 그저 멋지고 재밌게만 봤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영화예요. 제 개인적으로 TV에서 한 번 더 보여줬음 하는 리스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멧가비 2016/12/16 16:34 #

    TV에서 방영했던 적이 있나요?
  • 닛코 2016/12/16 16:58 #

    당시엔 비디오로 봤었는데, 오래전 케이블 초창기일 때 한 번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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