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리머스 Screamers (1995) by 멧가비


채광 노동자 출신들로 구성된 연합군과 행성 시리우스의 식민지 사업 주도 회사인 NEB간에 유지되고 있는 20년 전쟁. 그러나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땅 밑에서 움직이며 비명을 질러대는 살인 로봇 '스크리머'들이다. 막상 영화 안에서는 두 집단 간 치열한 전투 대신 소강 상태가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작은 냉전시대 미소(美蘇)간 긴장 상태와 매카시즘을 SF 호러로 치환해 묘사했던 사회 풍자 소설. 원작의 미국과 소련을 노동자와 기업으로 각색함으로써 9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 경제 불황이라는 시대상을 담아낸다.


영화 처음부터 등장하는 초기형 스크리머는 마치 [환타즘]의 "날으는 공"처럼 생긴, 단순하면서도 섬뜩한 모델이다. 그러나 전초기지를 떠나 사막을 향할 수록 더욱 (스스로) 업그레이드된 스크리머들이 등장한다. 썩은 물고기와 쥐를 섞은 듯한 모델을 시작으로 급기야 인간을 흉내내는 잠입형 안드로이드까지 나타나는데, 마지막에 주인공 조 헨드릭슨을 도와준 로봇은 그래서 오히려 더욱 섬뜩하다. 단순히 인간성을 품게 된 로봇이라는 판타지가 아닌, 로봇이 자가 발전을 반복한 끝에 인간의 감정 까지 모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정작 스크리머들을 만든 것은 연합군이라고 언급 되지만 스크리머들을 제대로 통제하기는 커녕 스크리머들의 정체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스크리머들에 대항하기 위해 NEB들과도 휴전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원작이 나왔을 당시를 생각하면 '맨해튼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은유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연합군과 NEB간 전쟁의 원인인 신 자원 '브래니엄'이 엄청난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으며, 때문에 시리우스에 체류하는 인간들은 일종의 이독제독(以毒制毒)의 개념으로 납성분 담배를 피운다는 설정이 있다. 결국 핵으로 일궈낸 공포 위의 평화, 그러나 결국은 모두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 곰인형의 움직임이 더욱 섬뜩한 것.




연출 크리스천 더과이
각본 댄 오배넌
원작 필립 K. 딕 (두번째 변종, The Second Variety,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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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위장해 잠입하는 살인 기계라는 원작의 설정은 [터미네이터]에 영향을 주었을텐데, 재미있게도 영화판에서 인간의 감정을 배우는 기계가 등장하는 건 [터미네이터 2]에서의 역수입인 듯 보인다.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6/12/15 21:12 #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어린이 남매 자살폭탄로봇 입니다. 여자 또는 남자 아이로 된 자살폭탄로봇은 말 그대로 전장터에서 병사들의 마음을 흔드는 몸짓과 말을 하면 접근하면 그대로 펑~.

    진짜 완전한 자살공격의 진수였습니다. 인간혐오를 넘어 실재 어린이라고 해도 다 쏴죽인다고 해도 전범행위인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 잠본이 2016/12/16 00:27 #

    원작인 '네 번째 변종'은 배경에 대한 별다른 얘기 없이 그냥 밑도끝도없이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피폐해져가던 병사가 점점 진화해가는 로봇병기에 절망하다가 결국 (약간의 반전을 거쳐) 최후를 맞는데 그 순간 '저놈들은 이제 인간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로 진화한거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영화는 꽤 각색을 많이 한 듯.
  • 멧가비 2016/12/16 16:28 #

    원작 제목이 맘에 안 들어서 바꾸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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