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2016) by 멧가비



[새로운 희망]의 도입부에 간단하게 서술되었던 "데스스타 설계도를 훔친 반군 첩보원". 사실상 영화는 이 한 줄에서 시작된 셈이다. 거기에 더해, 이젠 정사(正史) 외로 분류되는 비디오 게임 [스타워즈: 다크 포스]의 카일 카탄과 잰 오르스의 설정을 적당히 재해석한 이야기.


비유하자면 이렇다. 우선은 클래식과 프리퀄 삼부작을 잇는 물렁뼈 역할을 하는 영화다. 두 파트의 삼부작이 결국 한 줄기의 이야기임을 새삼 실감하게 해주는 역할. 그런가하면 단지 물렁뼈에서 그치는 대신 이야기는 두개골처럼 단단하다.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에서 벗어나, 반군 요원들도 전쟁 윤리에 대해 자문하는 등 좀 더 깊이있는 전쟁 서사로 진화한다. 모두가 잘 아는 영웅 루크 스카이워커가 제국군의 데스 스타에 한 방을 날려 넣기까지 이렇게 처절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성공이다. 역사에 이름 한 줄 남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이니 그 끝이 어찌될지는 뻔한 일이었지만, 너무 뻔해서 맥빠지지 않게 멋진 죽음을 부여한 점이 맘에 든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출생의 비밀이나 운명 어쩌고를 말하지 않는 영화, 그 동안 시리즈가 주목하지 않았던 계층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 점 좋다. [제국의 역습] 이후로 가장 슬프고 시리즈 사상 가장 인간적인 스타워즈 영화다.


인물 구성이 좋다. 이데올로기에 환멸을 느끼고 회색의 영역만을 바라보려 하는 진과 사보추어로서의임무와 한 인간으로서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카시안, 그들에게 동기부여하는 제국군 출신 전향자 보디. 그리고 전쟁의 주변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치룻과 베이즈는 국난에 힘을 보태는 의용군이나 승병을 연상시킨다. 캐릭터들이 개성있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이야기와 액션이 낭비되지 않는다. 세계관 리부트 전 원래 설계도 탈취의 영웅이었던 카일 카탄은 이제 사실상 사라진 캐릭터가 되었지만, 그 포지션을 넘겨받은 캐릭터들이 이 정도라면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인물 각자의 개성과는 달리 그들이 팀으로 묶이는 과정에서의 화학작용은 확실히 약하다. 그건 아쉽다.


원전의 리바이벌에 불과했던 [깨어난 포스]의 실망감과 달리, 궁금해했던 그러나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 좋다. 이야기의 깊이와 풍부함 뿐 아니라 장르적 차용도 맘에 든다. AT-ACT가 반군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스타워즈식 거대 괴수물이며, 그 분의 쇼타임은 어지간한 슬래셔 호러만큼 무섭다.


이스터 에그나 오마주도 올드 팬들에게만 호소하는 무리한 끼워넣기가 아닌, 대체적으로 적재적소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점도 좋다. 손 잘리고 산재 못 받은 바보 콤비(Evazan & Ponda) 등장할 때 극장 안에서 나만 웃은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 어제의 비보를 잊고 있었다가 오가나 총독 나오는 장면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이전 작품들에서 구멍으로 존재했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메꾼 시도 역시 있었는데, 폭스의 [엑스맨]시리즈와 달리 이쪽은 꽤 매끄럽고 설득력 있다. 데스스타의 약점이라던가 [새로운 희망]에서 제다이도 아닌 도돈나 장군이 "May the FORCE be with you" 대사를 하던 것도 적당히 설명이 된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 데스스타 건조는 타킨이 주도한 게 아닌, 부하직원의 프로젝트에 숟가락만 얹은 거였다는 사실. !!스타워즈가 이젠 현실의 직장 지옥을 반영한다.


본격적인 전쟁물로 기획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예상이 빗나갔다. 본격적인 SF 밀리터리물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보다는 레지스탕스의 첩보전에 더 가깝더라. 역시 스타워즈는 연출은 크고 이야기는 작아야 제맛이다.


프리퀄부터 시작된, 유머 한 점 없이 "진지해 빠진"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번 영화는 따지자면 스핀오프인 셈이니 나쁘지 않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시트콤처럼 유머러스한 스타워즈 영화보다 아닌 쪽이 이젠 더 많아졌다.



공주님 가시는 길, 초라하지 않을 수 있게 영화가 잘 나와서 다행이다.




연출 개럿 에드워즈
각본 크리스 웨이츠, 토니 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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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 지미 스미츠의 '베일 오가나'와 캐리 피셔의 '레이아 오가나'가 함께 출연한 유일한 스타워즈 영화.


- 아마 올드팬들이라면 "Baaad Feeling" 대사를 누가 할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응 너구나.


- 앤서니 다니엘즈는 현존하는 스타워즈 실사 영화 여덟 편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배우.


- 몬 모스마 역할은 [시스의 복수]에서 젊은 모스마 역할을 맡았던 그 배우인 것 같던데, 원조 배우와 더불어 수상식물처럼 매가리 없는 인상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변함없어서 좋다.


- 소우 게레라는 '보바 펫'에 이어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데뷔한 캐릭터가 실사화 작품에 등장하는 드문 경우.


- K-2SO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는 앨런 투딕은 컬트 드라마 [파이어 플라이]의 팬들에게 익숙한 배우이기도 한데, 이번 영화의 역할이 어째 [아이, 로봇]의 소니를 연상시킨다 싶더니만 그것도 투딕이 연기한 거였더라. 이런 우연스러운 반전이, 반전스러운 우연이!


- [닥터 후]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펠리시티 존스도 은근히 내가 아끼는 시리즈물에 골고루 출연한 배우가 됐다.


- 타킨 총독 역할은 몬 모스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스의 복수]에서 피터 쿠싱과 닮은 배우를 기용했던 적이 있는데도 왜 굳이 CG로 구현하려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베이더의 헬멧 재질이 무광인 데에서 감탄했다. 무서운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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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사서독 2016/12/28 22:05 #

    나치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연합군 특공대 얘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답니다. ^^
  • 멧가비 2016/12/28 23:07 #

    제국군의 나찌 이미지를 참 오래 잘 써먹어요
  • 폴라 2016/12/29 00:55 #

    C3-P0 !!!!
    뭐 .. 영화적 완성도를 따질수없이 컬쳐적인 입장에서 이해해야하는 장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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