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러 The Adjustment Bureau (2011) by 멧가비


젊은 정치가 데이빗과 현대 무용수 앨리스는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거대한 계획의 방해를 받아 자꾸만 헤어지게 된다. 그 거대한 계획이란, 말 그대로 거대한 존재의 계획. 데이빗을 따라다니며 운명을 통제하려고 드는 존재들은 크리스트교의 천사에 준하는 존재들이며 그들이 받드는 계획의 주체는 아마도 야훼. 신이 정한 운명을 거역하면서 까지 사랑을 지키려는 데이빗의 행보는 전형적인 판타지 로맨스지만 그 이면엔 종교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감춰져 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데이빗은 한낱 인간일 뿐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지는 일이 어째서 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신의 사도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도 결국 현실 관료제와 닮아있는 천국 비즈니스의 공무원일 뿐이다. 영화의 논리에 따르면 신의 직접적인 대리자들 조차도 모르는 그 거대한 뜻이라는 걸 하찮은 인간들이 어찌 알겠느냐는 말과 같다. 영화와 무관한 얘기지만, 그런 막연한 믿음이 서로 달라 전쟁하며 쌓아온 게 인류의 역사 중 한 갈래가 아닌가.


또한 종교의 반인본주의는 어떠한가. 데이빗은 미국 시민이자 전도 유망한 정치가이지만 절대자 앞에서는 결국 그저 사람일 뿐이다. 도그마라는 이름 아래 고통 받고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고민 역시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근원과 의미와 결과를 알 수 없는 막연한 계획에 의해 개인의 행복은 무시되어도 좋을 사소한 것인가.


천사들의 말에 의하면 신의 계획대로 됐을 때가 더 행복한 삶이라지만, 영화 속에서 천사들의 그 말은 엄숙하고 믿음직하기 보다는 무책임한 톤으로 언급될 뿐이다. 근거도 없고 신빙성도 없다. 당장에 놓치는 행복 대신 나중에 얻을 행복이 더 낫다는 저울질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의 플롯을 뒤집어, 신의 계획대로 순종했다면? 이라고 가정해도 문제다. 데이빗은 이미 자신의 운명이 신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굴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렇다면 그가 계획의 끝에 얻을 행복은 그의 자유의지로 얻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불로소득에 불과한지 답을 내릴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결국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춰버리는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을 티 안나게, 조금 달달하고 따뜻하게 하면 이 영화같은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연출 각본 조지 놀피
원작 필립 K. 딕 (Adjustment Team,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