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リング(1998) by 멧가비


서양의 호러물과 다른 아시아 공포의 특징은 "추상성"과 "모호함"에 있다. 그나마 동양적 공포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서양 호러의 '부기맨' 캐릭터들도 그 존재감만은 명확한 것이 대부분. 특히 "원한"이라는 개념은 동아시아 호러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에 더 가깝다.


저주를 확산시킴에 있어서 "바이러스"라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치환한 독특한 발상으로 이 영화는 당시 [큐어] 등과 함께 모던 J호러의 붐을 일으킨다. 게다가 그 저주를 비디오 테입에 담아 퍼뜨린다는 건 동서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발상이었다. 원한이라는 지극히 동양적 개념을 서구 테크놀러지를 상징하는 물건에 담는다는 방식은 놀라웠다. 어쩌면 '램프의 지니'의 동아시아 공포적인 변주였을 수도 있겠다.


지금에 와서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사다코가 저주를 퍼뜨리는 방식에 적용된 룰이다. 특정한 물건과 장소 등 메뉴얼이라도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은 꼼꼼한 방식에 그 저주를 해제하는 방법 마저도 명확하게 딱 떨어지게 체계화 한, 어찌보면 굉장히 젠틀한 저주인 셈이다. 사다코는 AD&D의 룰마스터처럼 공정한 저주의 집행자였다.


이 영화 속 세계관의 논리에 따르면 이론상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마지막에 남는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저주를 전달해 모두가 살 수 있는 필승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 일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구나, 사다코는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희대의 저주 판매업자였구나!


영화가 끼친 문화 기호학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호피 팬티를 입은 뿔 달린 도깨비처럼, 긴 머리를 늘어뜨린 소복 입은 처녀 귀신 이미지도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일본 문화의 잔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나온 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한국 호러의 부기맨 포지션은 전부 사다코의 망령들로 채워졌던 시절이 있지만, 상처가 곪아 터지고 새 살이 돗듯 이제는 적어도 복제 사다코들이 한국 호러 영화에 출연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아마도 "링"의 "사다코"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다코의 복제품이 웃기다는 인식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후로 여러 후속작들이 나왔지만 원작 소설의 세계관을 따른 [라센]을 제외하면 이후의 모든 후속작 및 리메이크판은 그저 사다코의 캐릭터성을 소모하는 방식으로만 제작됐다. 이 점이 아쉽다. 상기한 "사다코 저주 넘기기" 자체를 소재로 인간들이 경쟁하는 심리 스릴러 후속작이 나오기를 내내 기다렸는데 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영화 제작자가 없었나보더라. [라이어 게임]같은 사다코 영화를 봤으면 좋았을텐데.



연출 나카다 히데오
원작 스즈키 코지 (リング,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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