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온 呪怨 (2002) by 멧가비


동시대에 J호러 붐을 조금 먼저 일으켰던 98년작 [링]과의 비교는 불가피한 일일텐데, 이 쪽의 원작을 99년의 비디오판으로 친다면 사실상 링과 거의 시기적 차이가 없는 셈이다. 물론 그 1년이란 시간에 링의 영향을 받아 부랴부랴 급하게 제작되었을 거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저 [링]의 아류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서 그치는 대신 여러모로 비틀고 뒤집어 차별화 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인다. 우선적으로 눈에 띄이는 것은 귀신이 등장하는 타이밍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 게다가 해가 떠 있는 훤한 대낮에도 허를 찔러 출몰한다는 점이다. 이는 저예산 V시네마로서의 자구책에 가까운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주온만의 독특한 공포 전달 방식이 성립되게 한다.


뭣보다도 [링]의 저주의 매개체인 비디오 테입과 기계식 다이얼 유선 전화기는 그것들을 자연스러운 생활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시대에 철저히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흉가의 공포는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포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공포의 소재라는 점이 다르다. 게다가 [링]의 저주가 꼼꼼한 룰에 의해 집행되는 일종의 "벌칙"이라면 주온의 저주는 "재난"이나 "사고"에 가깝다.


비디오 테입에 담긴 저주는 비디오 테입을 "본다"는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닿는다. 비디오 테입을 재생하는 건 비디오 안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집 안에 씌인 저주는 성질이 다르다.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집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드물다.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난다던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한다 혹은 무언가 확인한다 등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과정적 행동이다. 링으로 치자면 비디오 테입을 만지기만 해도 저주에 걸리는 셈이다. 내가 만약 저주에 걸린다면 링의 저주보다는 주온의 저주에 걸리는 쪽이 조금 더 억울할 것 같다.


이것은 주온의 부기맨인 '사에키 카야코'가 저주를 제조하게 된 근원적인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카야코는 불행한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과 세상에 원한을 돌린 인물이다. 그리고 그 저주를 받는 사람들 역시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소한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는 게 존재했던 [링] 바이러스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즉 일본의 괴담이나 공포 창작물 등에서 쉽게 발견되는 "남 탓"의 정서가 깊이 배어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저주를 당해 죽는 사람들을 그저 죽이는 자체로 끝내는 게 아닌, 자신의 "분함"을 타인에게 "억울함"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의 저주를 뿌리는 셈이다.


사소한 차이점을 몇 가지 들자면, 낡은 비디오테입 화면이 주는 그로데스크함이나 녹화 영상을 거꾸로 돌려 기괴하게 만든 사다코의 움직임 등, 링이 철저히 "시각적"인 공포를 주는 방식이라면 이 쪽은 그보다는 "청각"에 더 의존하는 편이다. 목을 울려서 내는 그 소리는 우리 어릴 적에도 장난으로 많이 하던 건데 이 영화 하나 때문에 그게 무서운 소리로 인식되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파격성은 바로 카야코의 신출귀몰함에 있지 않을까. 요새 우스개 소리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오가는데, 이 영화의 논리에 따르면 이불 안도 충분히 위험하더라.




연출 각본 시미즈 타카시



덧글

  • 루트 2017/01/13 22:08 #

    평소에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이웃과 한 이불 덮게 될 일은 없었을 텐데.
  • 멧가비 2017/01/14 12:52 #

    그러고보니 이웃 간에도 서로 삼가는 일본 주택가 문화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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