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코 대 카야코 貞子vs伽椰子 (2016) by 멧가비


만우절 농담에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기획이었다. 링의 원론적 후속작인 [라센]처럼 세계관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링]과 [주온]이라는 모던 J호러의 양대산맥은 결국 헐리웃의 방식을 따라 캐릭터의 상품성만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후속작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소위 "VS물"이라는 것부터가 더 이상의 상품성이 없는 소재들을 땡처리 하는 개념으로 섞어버리는 아이디어로 쓰일 때가 더 많기도 하고.


가장 가까이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2003년작 [프레디 VS 제이슨]일 것이다. 각 나라의 호러 캐릭터를 대표하는 두 귀신의 대결을 대전제로 놓고 기획된 영화른 점에서 말이다. 게다가 프레디와 제이슨 그리고 사다코와 카야코는 등장과 동시에 호러 팬들을 사로잡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고, 외부적으로 수많은 패러디의 역사를 거쳐 결국 본체마저 극한으로 희화화 된 캐릭터라는 점 역시 같다. 하지만 여기엔 이 두 영화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프레디와 제이슨은 슬래셔, 즉 날붙이로 희생자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물리적" 장르의 존재들이다. 그리고 타 매체에서 이들에게 얼마나 코믹한 이미지를 덧씌운들 이들의 잔혹한 행위까지 흉내내는 경우는 없다. 이들이 아무리 코미디언 뺨치게 웃긴 "이미지"를 가졌다 한들 후속작에서 또 다시 끔찍한 살인을 전시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결국 관객을 자극하는 것은 이들 자체가 아닌, 이들의 폭력적 "행위"와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다코와 카야코는 지극히 동아시아적인 추상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들이 피해자들의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뽑지 않아도 무서운 건 이들의 "존재감" 자체 때문이다. 프레디와 제이슨이 등장해서 무언가를 해야 공포가 시작된다면, 반대로 사다코와 카야코는 그들이 등장하기 전 까지가 무서운 존재들이다. 서양의 칼잡이 괴한들이 "결과"의 귀신이라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일본의 두 여자 귀신은 등장 전 까지의 서사가 받쳐줬을 때 비로소 존재 가치를 갖게 되는 "과정"의 귀신들이다. 여기에는 "음산함"이라든가 "오싹함", "불길함" 등 온갖 추상적인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좋다.


그러나 영화는 두 귀신이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나리오 대신, 그저 각 시리즈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플롯을 개별적으로 교차 진행시키다가 조금은 억지스럽게 맞붙이는 구성을 취한다. 그리고 양쪽에서 각각 사다코와 카야코의 저주를 받는 인물들에게는 종이 한 장 만큼의 서사나 캐릭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와 나츠미는 그저 두 파이터를 링 위에 올리는 호객꾼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건 진지한 건지 웃기려고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퇴마사 캐릭터. 카우보이 비밥 머리를 하고 괴상한 손짓을 하는 껄렁한 퇴마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부터가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퇴마사가 제시한 이이제이 수법은 마치 저주 사업자들의 입찰 분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지하지 않은 게 영화의 단점은 물론 아니다. 이제 와서 사다코와 카야코를 무서워하지도 않을 바에야 어설프게 인간 놈들이 진지한 척 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존재감을 배제하고 두 귀신의 이종격투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결정적인 지점에서 자신들이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썩은 우물물이든 머리카락이든 뭐든 서로의 장기를 발휘해서 치고 박고 찢어발기는 난투극을 확실하게 보여줬더라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늘 [프레디 VS 제이슨]이 결코 나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프레디 제이슨은 최소한 파이트머니 받고 링에 올라간 프로 선수들처럼 제 역할들을 다 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다코와 카야코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도 영화를 제작할 의향이 저들에게 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그래서 꿈 꿔 본다. 사다코와 카야코는 물론이거니와, 농구공 할멈이나 토미에, 변소의 하나코, 입 찢어진 여자 등 J호러 아이콘들이 총출동 하는 일본판 [캐빈 인 더 우즈]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연출 각본 시라이시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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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니킬 2017/01/13 19:55 #

    정작 사다코와 카야코가 맞붙는 장면은 후반에나 그것도 찔끔 나오고, 주온 쪽 파트 자체가 후반에 사다코와 맞붙이기 위해 후다닥 진행시키는 느낌이 드는게 세계관 설정을 링 원작자한테 쓰게 시켰다고 해도 너무 밸런스가 안 맞는거 아닌가 싶더군요.;;;
  • 멧가비 2017/01/14 12:52 #

    그러게 말입니다. 치킨 시켰더니 배달 오는 동안 경기 끝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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