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2013) by 멧가비


평범한 연애를 하기엔 지나치게 섬세한 남자가 일종의 감정적 도피처를 찾았으니, 그게 바로 신종 OS인 인공지능 사만다. 알고리즘과 인격의 경계가 모호한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는 이미 흔한 소재이거니와, 영화 역시 영리하게도 그 뻔한 것에 대해 쓸 데 없이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방향은 인공지능의 자아가 아닌, 인공지능을 "대상화"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와 그 파국, SF니 특이점이니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사실 꽤 정통에 가까운 로맨스다.


영화의 관심사는 인공지능을 넘어 인공"감정"의 영역에 도달한다. 정통 로맨스라는 다소 이질적인 장르와 결합한 이른바 변종 사이버펑크 쯤 되겠다. 보통의 사이버펑크처럼 인체의 결함이 아닌, 정서의 결함을 보완하는 미래 기술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영화 내에서만 특이점에 대해 다룬 게 아니라, 영화 자체도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의 특이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장르사에 남을 가장 섬세한 사이버펑크 작품이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여타의 어느 사이버펑크 혹은 기계 문명 디스토피아작품 보다 공포스러운 측면이 있다. 무력으로 혹은 기술적 우위로 인간을 점령하는 방식이 아닌, 이젠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인공지능이라니. 인공지능이 폭력적이어도 문제지만 반대로 너무 섬세하고 스윗해도 문제다.





연출 각본 스파이크 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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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의 [Be Right Back] 에피소드와 병행해서 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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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2017-10-13 13:47:06 #

    ... 고 암암리에 인정하는 쪽에 가까워서 그것 하나는 맘에 든다. 연출 드니 빌뇌브각본 햄톤 팬커, 마이클 그린 ---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오마주 하기도 했던 [그녀]의 영향을 이 영화에서 찾긴 어렵지 않다. 선후배 작품이 교환하는 상호 모티브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며 재미있는 감상법 중 하나다. 반면 [내추럴 시티 ... more

덧글

  • 닛코 2017/02/06 21:42 #

    마지막에 사만다가 냉정하게 떠났을 때(?) 섬뜩한 기분을 느꼈더랬죠. 인류가 이런 식으로도 종속될 수 있겠구나 싶은...
  • 멧가비 2017/02/07 00:54 #

    그러게요. 그 많은 사만다 중에 누구 하나라도 나쁜 맘 안 먹는다는 보장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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