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시즈 Species (1995) by 멧가비


외계인들이 DNA 합성 생물 제작 방법을 알려준 이유 불명. 실험으로 태어난 합성 생물 '실'의 정확한 습성과 '실'을 만든 과학자들의 목적 역시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실험실에서 탈출한 실은 빵조각을 흘리듯이 달아나고 과학자들은 추격하는 느슨한 추격전이다. 과학자들이란 사람들은 총을 쏘질 않나, 무리 중엔 심지어 초능력자도 섞여 있다. 미심쩍지만 만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설정들은 50년대의 쿨한 공상과학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실은 어린 아이의 모습인 채로 자라다가 고치를 깨고 나타샤 헨스트리지로 변태한다. 인간의 모습을 처음 갖추는 순간이 아닌, 성체가 될 때 고치를 깨는 것은 이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이 번식에 있음을 뜻한다. 모든 생물의 가장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기도 할텐데, [스플라이스]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설정이고 스토리고 나발이고, 영화가 작정하고 밀어주는 건 나타샤 헨스트리지라는 모델 출신 주인공의 초현실적 미모, 거기에 H.R. 기거 디자인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다. 기거 디자인 영화의 대표작 [에일리언]의 성 반전 버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흥미롭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지노모프'의 특징이 남자 성기를 닮은 머리통과 발기하는 이중 턱이라면, 실은 외계 생명체로서의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체의 곡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가슴에서는 촉수가 나온다.


아쉬운 점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낭비된 측면이 있다는 것. 실을 쫓는 인간 캐릭터들은 사실 들러리나 다름 없는데, 정작 영화에서 주력으로 밀어주고 있는 실 조차 헨스트리지의 눈부신 전라를 제외하면 임팩트가 약하다.(결국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90년대 중반이 시각 효과 기술의 과도기였던 만큼, 분량도 얼마 없고 그나마 조악한 CG 대신 수트 액션과 스톱 모션으로 뻔뻔하게 밀어부쳤더라면 차라리 좀 더 개성있는 B급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수컷들의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녀와의 섹스 한 번을 목숨과 맞바꾸는 어리석은 수컷들 이야기는 장르와 매체를 불문하고 수 없이 반복 재생산된다. "미녀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코드는 토브 후퍼의 [뱀파이어]나 정소동의 [천녀유혼]과 비교해봐도 재미있겠다.


짠내날 정도로 예산 아끼느라 잘 안 보여주는 기거 디자인 중에서도, 실이 꾸는 악몽에 등장하는 괴물 기차는 훌륭하다. 음침하게 멋지다. 이것만 가지고 싸구려 공포 영화 한 편 만들었어도 좋았을텐데.




연출 로저 도널드슨
각본 데니스 펠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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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스플라이스 Splice (2009) 2017-03-08 15:22:51 #

    ... SF의 불쾌한 상상력을 현실의 가정 문제에 은유한 지점이 그렇다. 합성 생명체 '드렌'은 번식 본능을 향해 달리는 괴물이다. 이는 [스피시즈]의 반복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함과 광기가 끼어들기도 하고, 불임 컴플렉스가 개입되어 이야기를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만든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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