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 Hacksaw Ridge (2016) by 멧가비


초반 진단은 확실히 똑떨어진다. 이해 못할 신념을 고수하는 신념은 동료들과 갈등을 빚을 것이고, 여차저차 참전해선 당연히 멜 깁슨 식 자극적인 전투 시퀀스가 이어질 것이며, 포화 사이에서 공황 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주변을 둘러보면 슬로우 모션으로 죽어가는 동료들. 가장 괴롭히던 친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될 것이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실존 인물의 삶이 텍스트로 요약되겠지.


꽤 적중한다. 그러나 한 방 먹는다. 영화 속에서 전우들이 데스몬드를 잘 못 본 것처럼 나도 영화를 잘 못 봤다. 진짜는 핵소 고지에서 퇴각한 이후부터다.


예측할 수 있는 갈등과 해소의 드라마를 해치우듯이 끝낸 데스몬드에게 진짜 무대는 부상병들로 가득한 무주공산이다. 영화는 갑자기 잠입 액션의 장르적 쾌감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을 죽이지 않는 암살자 같다. 심지어 어쌔신을 위한 던전도 준비되어 있다. 비폭력의 액션이라니, 이 부분은 좋다.


그러나 영화 전체가 거대한 아이러니다. 비폭력 전쟁 영웅의 감동 실화를 주장하면서 정작 뼈와 살이 터져나가는 액션 시퀀스로 관객을 자극하는 일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 점. 뒤이어 나올 비폭력 액션 시퀀스를 위한 사전작업 쯤으로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관객은 또 하나의 전쟁 영화, 또 하나의 멜 깁슨 영화로 기억하질 않겠는가. 여성 댄서들이 군인들을 흥분시키고 밤에 곱씹을 거리를 남겨 주는 국군 주말 불교 행사를 보는 느낌이다.


감동을 주기 위해 마련한 장치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 걸 보면서도 기계적으로 감동을 느끼고 지나고 나면 찜찜한 기분을 느낀다. 군인에 대한 리스펙트로는 세계 상위권인 미국 사회에 먹히고도 남을 신상품 전쟁 영화를 또 하나 내놓으면서 조금은 다른 성향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는 그저 영화가 "팔릴" 수 있게 거들 뿐인 왼손이었을지도.




연출 멜 깁슨
각본 랜달 웰러스, 앤드루 나이트


덧글

  • JOSH 2017/03/11 12:51 #

    멜 깁슨이 만든 걸 보면 ...
    좀 그 ... 그런 말씀하신 부분이 은근히 신경쓰일 정도로 느껴져요.

    패션오브크라이스트는 그 내용이 또 그 사람 성향에 맞으니까 잘 어울렸는데,
    헥소는 왠지 양의 껍질을 쓰고 온 염소 느낌...
  • 멧가비 2017/03/11 16:49 #

    양의 껍질을 쓰고 온 염소, 비유 와닿네요
  • 잠본이 2017/03/11 15:15 #

    주인공으로 전직 스파이더맨을 데려온 게 이유가 있었군요. 비폭력 잠입액션이라니(!)
  • 멧가비 2017/03/11 16:49 #

    심지어 스파이더맨 시절이랑 연기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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