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by 멧가비


원인을 알 수 없고 피하거나 물리칠 수 없지만 시나브로 다가온다. 아닌 듯 조용하게, 모든 것을 망가뜨릴 파괴력을 지닌 채로. 영화는 우울장애라는 마음의 병과 그 파급력에 대해 파괴적 재앙이라고 정의 내린다.


전후반 두 파트로 나뉜 형식을 통해 영화는 우울증 환자 본인과 그 측근(가족)의 관점을 균형있게 다룬다. 파트가 넘어가면서 영화의 톤과 장르가 변하는 건 우울증의 당사자와 보호자(관찰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서 차이와도 일맥상통한다. 전반부에서 상대적으로 멀쩡하던 저스틴이 후반부에서 기초적인 생활은 커녕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중증으로 묘사되는 것 역시 단지 병증의 악화만이 아닌, 우울증을 대하는 본인과 제 3자의 관점 차이를 은유하는 묘사일 것이다.


우울증 환자인 저스틴에게는 주변 모두가 자신을 못살게 굴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존재들. 자신은 그저 마음의 병을 가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거나 떠나간다. 이게 전반부, 저스틴 본인이 받아들이는 자신의 우울증의 현실적인 모습. 


전반에서 스치듯 언급만 되던 소행성의 접근은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영화의 장르는 SF로 나아간다. 저스틴 본인에게 있어서의 우울증이 전반부의 연출 톤처럼 현실적인 고통(장애)의 문제였다면, 저스틴을 가장 가까이서 보살피는 언니 클레어에게는 주변을 광역적으로 파괴하는 재앙과도 같다. 여기서부터는 우울증 환자를 바로 곁에 두고 사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한 집 식구를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퇴장한다.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이에 형부는 자살(회피)하고 언니는 절망에 빠진다. 우울증 환자가 내뿜는 정서적 파괴력, 그것을 감당하는 서류상 가족과 진짜 혈육의 차이를 보여주는 초현실적 은유다. 초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고통에 공감할 수도,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font>SF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적이다. '네가 가끔 죽도록 미울 때가 있다'는 클레어의 말에는, 저스틴을 끝까지 돌봐야 하는 족쇄 아닌 족쇄를 찬 가족으로서의 원망과 이해불가의 공포가 동시에 담겨있을 것.


저스틴의 가족 구성에는 우울증의 시작과 끝에 대한 단서가 숨어있다. 저스틴의 부모는, 우울증이 가족력이거나 혹은 성장 환경에서 얻어지는 후천적 질환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언니인 클레어에게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돌봐주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메시지가 읽힌다. 저스틴에게는 언니 클레어야말로 초현실적인 존재이자 구원일지도 모르겠다.




연출 각본 라스 폰 트리에


덧글

  • 2017/03/12 15:1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3/12 16: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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