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by 멧가비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이자 관찰자 시점의 관찰 대상인 병석을 가리킨다. 학창 시절부터 서구 영화의 제목과 감독, 배우 이름 등을 줄줄이 꿰며 친구들의 경외심을 샀던, 소위 헐리우드 키드였던 병석. 헐리웃 영화들에 관련한 그의 조숙한 취향과 사전적 데이터들은 어릴 때 부터 그를 "튀는" 존재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지만 동시에 병석 자신을 삼켜버리고, 그로 하여금 세상에서 분리해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방황하는 방구석 천재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방구석 천재는 열심히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자에 부적응자에 정신 병자를 거쳐 그 굴곡 많은 삶을 스스로 끝낸다.


사람은 누구나 속는다. 일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속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 특히 자기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를 평생 속여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병석은 마지막 순간 까지 자신의 "재능"을 의심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자기 확신은 길이 잘들면 자신감이 되지만, 자만감이나 자의식 과잉으로 변질되어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영화 속 병석의 자의식 과잉은 현실도피에서 기인한다. 6~70년대의 불의한 세상이 만든 불운한 성장 환경은 소년으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고 영화 판타지만을 탐닉하는 염세적 몽상가로 만든 것일지 모른다. 


병석이 미군 부대의 스트립 댄서로 일하며 그를 "헐리웃 판타지"와 연결시켜 주기도 하는 친 누나를 자랑스러워 하며, 누나를 통해 얻은, 그러나 사는 동안 다 찾아 볼 수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영화 전단지 더미를 신봉한다. '4.19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의 한 가운데에서 소년 병석은 혁명에 고무된 고등학생들의 행렬에 대해 "엘리아 카잔의 [혁명아 자파타]에 비하면 이건 혁명도 아니다"라며 무시한다. 세상을 모르는 영화 소년의 철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가 채 피어나기도 전에 또 다시 군부 독재 정권에 짓밟히고만 역사의 비극을 조소하는 말이기도 하다.


비극은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누군가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드는 악순환. 영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피폐한 현실을 맨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어 영화를 [매트릭스] 삼아 도피한 것인지, 사실은 병석 그 자신도 마지막 순간 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연출 각본 정지영
원작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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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가 이 영화에서 적잖이 영향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