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1997) by 멧가비


그 시절, 스포츠 머리 학생들의 가슴에 울끈불끈 반항심을 끓어오르게 만든 전범. 이 영화 때문에 소년들은 주먹에 라이터를 쥐고, 필터 뜯은 말보로 레드를 피우고, 데니스 로드맨 티셔츠를 구하러 동대문을 뒤졌다. 좀 더 막 나가는 녀석들은 완벽한 비트 키드가 되기 위해 바이크를 타기도 했다. 덕분에 어부지리로 몇 번 얻어탔던 기억도 난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이 늘 아름답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시대의 아이콘이 된 청춘영화라는 의의가 있다. 덕분에 왕가위 영화는 도저히 못 보겠는 꼬마들에게는 적절한 대체재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물론 왕가위의 우라까이라는 걸 알고 본 놈이 몇이나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허무주의 꽃미남 민, 거친 욕망의 태수, 허풍쟁이 환규. 개성 뚜렷한 세 주인공의 호흡이 리드미컬하다. 물론 셋이 같이 어울리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셋인 각기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들어서는 무렵의 남자들이 가질만한 충동들을 대변하고 있는데, 당연히 나이 들어 다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영화가 한심하다기 보다는 나오는 놈들이 한심한 거지. 특히 주인공 민이라는 녀석이 말이다. 


민은 내가 아는 영화 캐릭터 중 잘 생긴 것 치고 가장 덜 떨어진 놈이다. 민에게는 태수같은 확고한 욕망이나 환규와 같은 현실 감각이 없다. 그저 정우성 얼굴만 달고 있는 백치. 주인공임에도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대신 벌어지는 상황에 늘 휩쓸리기만 하는 허깨비 같은 놈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그러하기도 하니 나름대로 현실감 있는 묘사라고 둘러대기엔, 이 놈은 생각이라는 것도 딱히 하질 않는다. 질풍노도는 살면서 자기가 제일 생각 많이 하는 줄 아는 시기인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놈들이 나오는 영화니 그 시절 그 꼬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겠지. 딱 자기들 정도의 사고 수준인 햇병아리 마초들이 나와 자기들이 할법한, 혹은 하고 싶은 멍청한 짓만 골라서 아주 멋지게 해내니 말이다. 성인 느와르가 아닌, 주변인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출 김성수
각본 심산, 박하
원작 허영만 (만화 비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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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무사 (2001) 2017-03-25 14:4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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