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2001) by 멧가비


놀라운 것은 스펙터클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이런 그림을 다 보다니. 사실상 이 영화는 [쉬리]가 만들고 그 쉬리로 인한 한국 영화 투자 붐이 만들어낸 셈이다. 역사인 듯 야사인 듯 아리송한 기록에, [7인의 사무라이]와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을 딱 좋을 만큼 우라까이 한 구로사와 아키라 "풍"의 영화. 얻을 것 없이 싸우는 남자들의 전쟁터라는 점에서는 21세기 한국판 [영웅본색]이기도 하다. 시대극으로서의 고증에 공을 들이면서도 현대극의 태도를 취하는 그 괴리에는 이질감과 함께 묘한 시대착오의 쾌감이 깔려있다.


멋진 배우들과 이국적인 배경이 돋보인 건 간단한 플롯 덕분이기도 하다. 크세노폰의 고대 그리스 진군 기록인 '아나바시스'처럼 적진에 고립된 고려 남자들의 귀향 도전기. 패닉의 '달팽이'를 배경으로 깔았으면 웃기면서도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도 이미 얼굴 챔피언이었던 정우성에, 얼굴만으로 신뢰를 주는 안성기. 그리고 떠오르는 얼굴 도전자 주진모. 그들을 한 화면에 모아놓고 매캐하게 누런 모래 바람을 미장센 삼아 흩날린다. 일단 그림이 된다.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그 누구도 저 그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테니, 그들이 고려로 돌아가지 못 할 거라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거기에 당시 아시아를 쌈싸먹을 줄 알았던 장쯔이 까지 가세해 땀냄새 탈취제 역할을 맡는다.


정우성의 여솔. 이름부터 먹어준다, 여솔. 한국 영화사의 Badass 기념비가 있다면 가장 꼭대기에 이름을 올려야 할 캐릭터가 바로 여솔이다. 주인 잃은 노비인데 전사야. 째째한 칼 대신 정우성 다리보다도 더 긴 창을 휘두른다. 장발을 휘날리는데 그 머리칼 사이로 정우성 얼굴이 보인다. 다 무릎 꿇으라 이거다. 게다가 완벽한 건, 정우성에게 대사를 몇 마디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모든 것들은 이 영화를 20대 정우성의 신화적 미모가 영화를 방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만들고야 만다. 개인적으로는 "죽을 자리를 찾는 전사"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여솔의 부용 공주에 대한 집착은 필부의 뻔한 사랑과는 다른 것이엇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다름 없었던 주인을 잃고 고향에 갈 이유마저 잃어버린 남자에게, 탈 노비의 자유란 큰 의미가 없음과 동시에 인생이 끝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는 야수에게 남은 건 뽀얀 얼굴 공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 외에 뭐가 있겠는가. 그 정도면 멋지게 죽을 충분한 명분이다. 설사 그 공주가 대책없이 떼쟁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솔은 정우성의 얼굴을 한 킹콩이다.


최정. 낙하산으로서의 초조함, 게다가 귀족인 그에게는 최악의 시대상이기도 한 여말. 그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 사막이 죽을 자리다. 여솔과는 신분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극단적으로 대비되지만 내부의 본질은 같은 셈이다. 사람간에 이를 갈며 으르렁 거릴 때는 그런 이유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부용 공주. 무정하게 쌈짓돈 잡아먹는 인형 뽑기 기계의 인형 같은 캐릭터다. 모두를 죽음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날아가는 나비라도 구경하는냥 산만하고 공허하다. 이런 영화의 여자 캐릭터는 늘 인간으로서의 그 자신이기보다는 일종의 "성배"나 "돈가방" 역할을 하게 된다. 시대극이라서가 아니다. [달콤한 인생]의 신민아를 여기에 데려다 놓아도 똑같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남성 취향의 장르라도 멋진 여성 캐릭터는 보고싶다.


여솔, 최정 뿐만 아니라 행군에 참여한 고려인들 모두가 그저 안 좋은 시대에 안 좋은 장소에 놓인 사람들이다. 시대인지 운명인지 모를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그들에게 그 곳에서 죽을 것을 명령한 셈이다. 결국 그들은 저무는 고려의 운명보다 조금 먼저, 이역만리 타향에서 모래 바람에 스러진다.


그 시절의 정우성은 오히려 소년 팬들을 열광시키는 묘한 "형"이었다. 이소룡처럼 싸움 잘 하는 형이 있는가 하면 정우성처럼 존나 잘 생긴 형도 하나 필요했다. 고맙게도 우리의 우성이 형은 주름 한 줄 없던 한창 때, 되도 않는 연기파 욕심 부리는 대신 간지 하나로 내달리며 남동생 팬들이 영원히 바이블 삼을 작품들을 남긴다. 인심도 좋지, 현대극 취향에게는 [비트]를, 시대극 취향에게는 이 영화 [무사]를 남겨주셨다. 애석하게도 판타지 취향에게 돌아간 것은 [중천] 뿐이었지만.






연출 각본 김성수



덧글

  • 解明 2017/03/25 18:27 #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개봉 당시에 크게 흥행하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본문에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박용우 씨가 연기한 유생 주명과 이두일 씨가 연기한 승려 지산의 관계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바뀌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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