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 by 멧가비


데이빗은 정말 쇼 박사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게 인간의 범위에서 생각할 만한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를 것이고, 실제로 그걸 행동으로 옮긴 방식은 다르다못해 섬뜩하다. 데이빗의 사랑은 쇼를 창조신화의 대지모신(大地母神)으로 승화시킨다.


많은 민족의 창조신화에서는 여성성을 띈 신 혹은 거인이 죽음을 통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고 인류를 창조한다. 데이빗은 쇼의 육체를 재료 삼아 페이스허거라는 이름의 아담과 이브를 제작함으로서 창세신이 된다. 커버넌트 호의 제어 컴퓨터 인공지능 이름이 "마더"인 것도, 잠들어있는 수 많은 개척민들이 영화 이후에 당할 꼴에 대한 복선이겠지.


데이빗과 웨이랜드 회장의 독대 장면은 데이빗이 느낀 피조물로서의 지위적 한계, 그리고 데이빗이 창조주와 같은 종(인간)들을 부정함으로서 역으로 그 스스로가 창조주의 위치를 욕망하게 되는 계기를 설명한다. 시리즈 내내 에일리언들이 인간의 가장 큰 천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이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무신경함,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삐침이 인류의 천적을 만들어낸 것.


그러나 수 많은 상징, 데이빗의 욕망 등 조금 더 파고들었으면 재미있었을 부분들은 대충 넘어가고 영화는 장르적 쾌감에 더 집중하고 있다. 거기까지 이르는 데에 데이빗의 고민이 분명히 있었을텐데 영화는 시치미 뚝 떼고 쇼의 시체만을 내놓는다. 그런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에서 그 많은 고생을 감수한 셈인가. 이렇게 되면 [프로메테우스]의 그 모든 과정이 이 영화의 프리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무례한 후속작 같으니.


어찌 보면 초심이다. 전체적인 결이 1편인 [에일리언]을 닮았으니까. 하지만 CG라든지 온갖 테크놀러지를 때려부은들 원조의 흉내가 원조를 뛰어넘게 만들진 못한다. 데이빗이 인간과 닮았으나 에일리언을 창조해내지 않고서는 인간을 극복하지 못했듯이, 이 영화도 1편을 닮으려 하나 "그저 프리퀄"에 머문다. 아니 애초에 에일리언의 기원을 밝히겠다는 기획부터가 글렀다. 그냥 모르는 게 좋은 것도 있는 건데 왜 굳이. 덕분에 덩달아 스페이스 자키까지 신비감만 까발려지고 토사구팽 당한다.


전작의 과학자인 척 하는 광신도 캐릭터들은 이 영화에 없지만, 대신 열등감 때문에 수천명의 목숨을 갖고 도박을 하는 안일한 책임자가 있다. 영화 속 모두가 이성적이고 프로페셔널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보는 것조차 버겁다. 에일리언이 강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멍청하기 때문에 그 모든 위기들이 발생한다는 식으로 영화가 흘러간다. 여기서 스릴이 깨지는 거다.
([패신저스] 때도 그랬지만, 식민지 개척 사업이 저 따위의 주먹구구라면 그 미래는 이미 디스토피아다.)


데이빗 패스빈더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데이빗이 월터를 가장하고 커버넌트에 승선한 후의 모든 표정이 걸작이다. 월터였더라도 다른 의미로 지었을 법한 중의적인 표정들. 연출이 실패한 트릭을 배우가 연기로 커버한다.


데이빗과 월터의 싸움 장면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처음 보는 정교한 맨손 격투장면이라서 신선하고, [블레이드 러너]로 시작해서 [터미네이터 2]로 넘어가는 그 흐름이 특히 재미있다.




연출 리들리 스콧
각본 마이클 그린, 존 로건, 잭 패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