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클 이어진 두 세계 (2017) by 멧가비


클리셰로만 뭉친 평작이지만 장르 불모지, 특히 SF의 지옥인 한국에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밀어부치는 사이버펑크 드라마가 오랜만에 나왔다는 사실에 큰 가치가 있다. 말이 타임슬립이지,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판타지 설정 뿐이었던 그 전 tvN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이 쪽은 진화다.


총 12화의 분량 중 초반 까지만 달려도 이미 수 많은 SF 영화들이 떠오른다. [매트릭스]로 시작해, [이퀼리브리엄], [이터널 선샤인], [엘리시움] 등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외국 드라마 까지 섭렵한다면 [블랙 미러] 까지 오버랩의 범위가 닿는다.


하지만 이런 짜깁기 구조를 비난하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SF 드라마의 수 많은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또 시도된 작품이다. 표절의 수준이 아니라면, 익숙한 설정과 전개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SF 안 보는 나라에서, 그것도 TV 드라마에서 대뜸 작가주의나 전에 없던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 SF 드라마의 명맥은 또 끊길 가능성이 높다.


과학 윤리, 기억과 자아, 망각의 양면성 등도 역시 익숙한 SF 단골 질문이나 이것을 한 작품 안에서 어느 것 하나 튀거나 소외되지 않게 모두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그것을 곧 잘 해냈다. 이것들을 다룸에 있어서 마치 예전 [테마게임]처럼 파트 구성을 택한 부분은 재치있다. 특히 '망각'을 '책임회피'로 해석한 게 재미있다. 그 와중에 가족애도 다룬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있다는 게 보는 내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사랑놀음으로 쓸 데 없이 분량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흑막이 계속해서 교체되는 반전의 흐름이 좋고, 박동건은 [자이언트]의 조필연 이후 내 맘에 쏙 든 한국 드라마 악당이다. 세속적 욕망 없이 오로지 미친 과학자로서의 캐릭터 역할에 완벽히 충실히 구는데, 과학 광기를 한국 드라마에서 저 정도 까지 밀어부치는구나, 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처음엔 한국 드라마 한참 안 보는 동안 한상진 배우가 저런 역할이나 맡을 정도로 그레이드가 떨어졌나, 하고 의아했는데, 그럼 그렇지.


단점이 없진 않다. 우선 잔 연출이 너무 많아 흐름이 조잡스러운 점. 나왔던 장면을 몇 번 씩이나 질릴 정도로 다시 보여주는 건 심각하다. 잡스러운 거 다 쳐내면 8부작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사이즈의 이야기다.


CG가 빈곤한 건 참을 수 있다. 보는 내 상상력으로 메꾸면 되니까. 하지만 예산이 얼마였든 아이디어 빈곤에 대한 변명이 되진 못할 것이다. 투명 휴대폰이나 VR 통화 같은 게 나올 땐 기껏 살려놓은 몰입도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요샌 저연령 특촬도 그렇겐 안 한다. 너무나 "나 미래인이오" 하는 코스프레 복장은 최악이다. 게다가 일반 구역의 미세먼지 설정은 기억 차단 기술과 전혀 무관한데,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하는 거잖아. 현실 풍자도 좋지만 단 20년 만에 무슨 황무지처럼 돼 버린 건 좀 무리한 설정이지 않았나 싶고.


외계인 설정이 그냥 맥거핀 수준으로 그친 게 제일 아쉽다. 모든 일의 시작이 별이의 존재인데 그걸 그냥 맥거핀으로 남겨버리면 드라마가 공허해진다. 시즌 2가 나오든 말든, 처음부터 확실하게 연작임을 표방한 작품이 아니라면 결말에 어떤 식으로든 최소한의 정리를 해줬어야 한다. 그냥 외계인 맞습니다, 하고 끝낼 게 아니라. [나인], [시그널] 등의 기존 tvN 드라마들 보고 나서 제일 빡쳤던 게, 그래서 대체 그 타임슬립은 뭔데? 였거든.


결론은, 그러니까 시즌 2는 나와야 한다는 것. 공승연은 무조건 나와야 되고.





비정기 한 마디

"다시 보고싶다 오렌지캬라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