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1998) by 멧가비


관음증, 물질 만능주의, 중독성과 휘발성 등. 영화는 일차적으로 매스미디어의 천박한 속성을 까발린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는 대신 영화는 조금 더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장 보드리아르의 '시뮐라시옹' 이론은 모방품이 원본의 가치를 상회하는 주객전도 현상에 대해 지적한다. 이는 현대 문명 속의 사람들이 매스미디어에 종속되어 현실을 외면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극중 전 세계 "트루먼 쇼" 시청자들은, 진짜 삶을 제쳐두고 트루먼의 성장을 집요하게 관찰하며 그가 울면 같이 울다가 그가 잠들고 나서야 안심하고 TV를 끈다. 영화가 나온지 20년 쯤 됐고 매스미디어의 헤게모니가 TV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간 현재에도 이 블랙유머가 유효하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바다와 하늘을 모방한 세트 벽면. 그 어딘가에 있던 출입구를 통해 트루먼이 세상으로 나가며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진짜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저 트루먼의 삶은 과연 가짜였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바깥 세상"을 진짜라고 해도 되는가. 트루먼과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가짜 가족과 가짜 친구,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교묘히 카메라를 향하는 상품 광고 그리고 감독 크리스토프의 존재 등이 트루먼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생활 영역,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산물들, 사각에서 이뤄지는 감시와 통제.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일정 부분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쇼윈도 라이프를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은 트루먼과 다른가. 트루먼은 세트를 등지고 진짜 삶으로 나간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루먼이 나간 그 곳이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 애초에 트루먼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를 바 없다면, 트루먼은 과연 "나간 것"이기나 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를 결정하는 건, 내가 누군지 인식하는 것보다 타인들이 바라보는 나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어떤 철학자들의 말. 적어도 트루먼은 이 명제를 완벽하게 반박한다. 트루먼에게 있어서 타인이란 TV 속 "연기자" 트루먼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뿐이다. 트루먼은 이것을 부정하고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 탈출한 것이다. 진짜 삶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을 살고싶어하는 욕망, 내가 나 자신을 결정하고 싶어하는 자아실현의 욕구.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마지막 희망을 주는 게 '실비아'의 존재였을 것이다.






연출 피터 위어
각본 앤드루 니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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