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더스 시즌1 (2017) by 멧가비


일종의 수미쌍관이자 원점회귀. 시리즈의 초석이었던 [데어데블]에서 시작한 핸드 이야기가 [아이언피스트]를 거치며 여기에서 마무리. 지랄맞다 싶을 정도로 개성 있는 네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아 놓는데다가, 기존 시리즈에 비해 분량도 엄청나게 줄었는데도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는다. 각각의 시리즈에서 주인공만 불러모았던 [어벤저스]와 달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던 주변 캐릭터들까지 소환해 이른바 "세계관의 교차" 같은 느낌을 준 점 좋다. 과연 마블, 과연 넷플릭스. 라는 느낌.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느낌 또한 동시에 드는 게 사실이다. 각각의 시리즈 모두 고유의 개성과 장점이 있었지만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아우라가 사라져 가는 듯 하다. 생각해보면 "놀랍고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제시카 존스] 까지만이다.


이번 드라마는 네 명의 거리 영웅이 집결하는 자리로서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줬어야 했다. 직전작인 [아이언피스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1.
불발탄 같은 각본에 질소 포장된 캐릭터에.

시고니 위버의 '알렉산드라'는 배우의 아우라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 끝낼 캐릭터를 그렇게 포장했나, 하는 느낌만 준다. 초반의 카리스마가 무색하게도 사망 직전 쯤에는 엘렉트라 입양모 포지션 외에 보여주는 게 없다.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한다"는 언급은 캐릭터의 음흉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나보다.


자아를 되찾고 나서의 엘렉트라 캐릭터도 목적이나 지향점이 불분명하다. 뭘 하고 싶은 거였을까. 기껏 핸드를 (말도 안 되게 쉽사리) 장악하고선 핸드가 원래 하던 발굴 작업이나 인수인계 받는 게 전부다. 정작 엘렉트라 본인은 영생을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럴 거면 굳이 알렉산드라 죽일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닌가. 기억을 되찾고도 데어데블을 매섭게 공격한 이유 역시 알 수 없고. 캐릭터들이 내면 없이 "기믹"만 작동한 것 같다.





2.
물리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조직 "핸드"가 이 정도로 허술한 시정잡배들이었나. 간부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이 모두 모인 본체를 상대하는데도 그 전 만큼의 위력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데어데블] 시리즈에서 정말 징글징글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붙던 닌자들은 다 어디간 거냐. 본거지에 쳐들어갔는데 입구에서부터 이미 간부 셋이 나타난다. 이기기는 커녕 디펜더 넷 중 누구 하나 다치게 하지도 못하고선, 홍콩할매는 뭐 잘했다고 "오래 막았다"며 싱글벙글. 속 편한 소리하고 자빠졌네. 전반적으로 디펜더 캐릭터들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없다.


블랙 스카이란 게 애초에 인간병기를 전제로 하는 건데, 그 인간병기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무력만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간단하게 실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도 거대 범죄조직으로서는 근본적인 구조 결함을 안고 있는 셈이다. 기존 간부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안전장치 하나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것. 수백 년 권력이 모래성이다.


멍청한 것도 문제지만 약해도 너무 약하다. [데어데블] 시리즈에서 그 무시무시했던 노부는 그냥 무라카미의 하수인에 불과했다던데, 정작 그 무라카미는 말만 많지 실전에서는 거의 최약체. 지팡이 짚고 걷는 홍콩할매 장풍이 훨씬 무섭다. 다섯 중 하나인 소완데는 제대로 싸우는 장면도 없이 납치당해서 목 잘리고 사망. 


이번 드라마만 봐선 제시카나 루크가 "핸드? 좆밥이던데?" 라고 말 해도 할 말이 없다.


3.
설정구멍.

가오는 [데어데블]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삼합회의 우두머리 쯤. 그리고 시즌2에서는 그 역시도 핸드의 일원이었다, 정도로 승격되더니 이제 아예 처음부터 핸드의 다섯 수장 중 하나였다고 말을 또 바꾼다. 핸드 수장이라는 설정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데어데블] 시즌2에서 세력 잃고 숨어살던 모습은 대체 뭔가.


바쿠토도 마찬가지로, [아이언피스트]에선 대충 어디어디 중간 간부 쯤으로만 묘사 됐었는데 이제와서 핸드 우두머리였다고. 그럼 결과적으로 콜린은 핸드 최고 간부의 직계 제자이면서도 마치 말단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조직 구조가 무슨 떴다방 다단계처럼 허술하다.


4.
블랙 스카이라는 개념은 그냥 맥거핀.

조직의 사활을 결정할 뭔가 대단한 전설적 존재 같지만, 쉽게 말하면 그냥 존내 싸움 잘 하는 주먹마담 행동대장이다. 그런 거 하나 키우자고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소리다. 핸드도 별 거 없고 블랙 스카이도 별 거 없었다. 이 정도로 맹탕인 조직이 수 백년 동안 막후에서 세상을 좌지우지 했다니. 이 드라마에 논리로는 전세계가 멍청이 천지다.





장점들도 있다.

1.
영화 쪽이랑 완벽히 분리된 것 마냥 언급을 꺼리더라. 예전 같았으면, "하늘에서 외계인들도 내려오는 마당에 닌자 전설은 못 믿냐", 등의 너스레 떠는 대사가 한 마디라도 있을 법한데 이제 그런 거 없다. 같은 세계관인데도 영화 쪽 언급하면 왠지 메타 발언 같아서 몰입이 좀 깨지는 게 분명 있었는데, 서로 각자 갈 길만 가기로 결정한 것 같아서 맘에 든다.


2.
초반에 디펜더 넷이 서로 엮이는 부분의 각본 만큼은 잘 짰다. 기존 행적들을 감안하면 저렇게 모이는 게 타당하다, 는 생각이 든다. 클레어가 네 명 불러서 모아놓고 "이제부터 너네 같은 팀임" 하는 식으로 대충 퉁치지 않은 점 좋다. 


3.
장점이랄지 애매하지만 어쨌든 수습된 부분. 분파인 스틱에게서 그나마 배우다 말고 하산한 데어데블이 어째 더 잘 싸우는 것처럼 보이고, 본가 도련님이신 아이언피스트는 그 상징성이나 명성에 비해 무능한 것. 그걸 그대로 설정으로 굳혀서 메꿀 줄이야. 매튜는 원체 타고난 전사고, 대니는 역대 가장 멍청한 아이언피스트라니. 그렇게 까지 나오니 더 뭐라고 할 말이 없잖아.


4.
제시카 캐릭터는 여전히 멋지다. 나머지 셋이 어딘가 하나씩 찌질대는 구석이 있는데 능력으로는 최약체인데다가 알콜 중독자인 제시카가 멘탈은 오히려 제일 강한 점 특히 멋지다. MCU 내에서 BadAss로는 1위 아닐까.

그렇게 간지나는데 청바지 뒷태는 또 존내 핫하셔.




그 외

1.
[원피스]에 대입해도 절묘하다.
데어데블은 견문색, 아이언피스트는 패왕색, 루크는 무장색, 제시카는 초인계 열매 정도?
콜린은 많이 쳐줘야 타시기 급.


2. 엘렉트라 캐릭터도 익숙한 것들의 조합
같은 세계관에서는 '윈터솔저'가 바로 겹치고 동 장르에서는 '제이슨 토드'도 생각난다.
어느 부분 쯤 가면 '백발마녀'도 떠오른다.


3.
뉴욕 한복판에서 마천루 하나가 콩가루로 변하고 그 배후가 누군지는 흔적도 못 찾았을텐데, 관련자들이 기소도 안 되고 사건 자체를 그냥 없던 일로? 호가스는 이 정도면 변호사가 아니라 마법사다.


4.
핸드는 그렇게 영역이 넓고 역사가 오래된 조직이어서 실제 역사적 사건들에 개입도 엄청나게 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여태 하이드라랑 한 번도 안 부딪힌 게 기적이다. 나와바리가 겹쳤으면 공멸했을테지.


5.
대사 한 줄로 체이스트 전멸이라니. 스톤은 등짝 한 번 나오고 그냥 사망 처리?


6.
빌딩 붕괴 장면의 데어데블과 엘렉트라는, 이런 목불인견이 또 없다.

세기의 사랑 나셨네 미친놈들아.




덧글

  • LionHeart 2017/08/21 23:53 #

    영웅들이 한데 모였는데도 그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핸드가 허접하게 보였지요...-ㅁ-;
    개인적으로는 '제시카 존스'에서 사연은 있다해도 제시카의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답답했는데, 이번 디펜더스에서 가장 상식인이라고 해야할까...정상인이라서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만큼 데어데블과 아이언 피스트가 답답했었어요 ;ㅁ;
  • 멧가비 2017/08/22 00:29 #

    자기 시리즈에서 갈등을 일단락 시킨 쪽(제시카)과 그렇지 못한 쪽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제시카는 킬그레이브한테서 물리적으로 완벽히 벗어났잖아요.
  • 듀얼콜렉터 2017/08/22 01:34 #

    저도 보고 '어, 그럼 스톤은 진짜 한번 등장하고 끝???' 하고 좀 벙쪘네요. 암튼 이걸로 핸드쪽 이야기는 싹 정리된듯.
  • 멧가비 2017/08/30 15:34 #

    그러게요. 떡밥을 무슨 짐짝 치우듯이..
  • 케이즈 2017/08/22 13:05 #

    드라마의 DC 영화의 마블의 재확인이라고 해야할지....
    초반에 우와 거리던게 보면 볼수록 어...음...
    마지막에는 으으...
  • 멧가비 2017/08/30 15:33 #

    심지어 몇 시즌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닥이 드러났죠 이 쪽은. DC 드라마는 유치하단 소리 들을지언정 그래도 시즌간에 나름대로 균형이 있고 일관성이 유지되는데 말입니다.
  • 프뢰 2017/08/23 18:17 #

    엘렉트라를 최종보스로 맞추려고 이야기를 급진전시킨 느낌? 혹은 8화라는 시간적 한계가 문제였을까요. 도대체 엘렉트라가 원하는 게 뭔지 명확하지가 않아요. 뭐 억지로 생각하자면 죽음에서 부활한 고통때문에 다시 그런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자원을 스스로 장악하기 위해서 한 거라면 납득은 되는데 그걸 자기편이었던 상관까지 죽여가며? 자길 조종하는게 마음에 안들었나? 근데 죽이고 나서도 하는 일은 안바뀜(...) 데어데블 편이 되는것도 아니고;

    핸드의 허접함도 공감되네요. 무라카미는 뭐 '안나서서 그렇지 나서면 제일 무서움'이라더니 작품 내 몇안되는 동양인이라 눈에 띄는 것 뿐이지 아니면 그냥 조직원 A라고 해도 딱히.. 사실 디펜더스가 왜 그렇게 경찰의 개입을 꺼리는지도 의문이에요. 미스티도 그냥 혼자 들어가서 털린거지 중무장하고 MP5 들려준 1개중대급만 돌입해도 좋은 승부가 될 거 같은데.. 불사 어쩌고 하는 소린 빼고 '왠 야쿠자 놈들이 빌딩을 장악하고 있다'이 정도로만 신고해도 되겠구만. 정 불안하면 같이 들어가던가 뒤에서 도와주던가. 제작비 한계 때문에 핸드의 특수능력을 묘사하기 힘들었던걸까요.

    불만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재밌게 보긴 했습니다. 스토리 전개 자체는 괜찮았어요. 각각의 사건이 핸드라는 공적으로 모이는 흐름이나 디펜더스 합류-미드랜드 빌딩 장면은 꽤 맘에 들었습니다. 개그씬도 어색하지 않고.. 캐릭터 비중도 골고루, 다들 나름의 활약을 펼쳤고. 부디 디펜더스 2는 좀 더 디테일과 연출이 좋았으면 합니당.
  • 멧가비 2017/08/30 15:32 #

    여러모로 드라마 제작 파트가 마블의 케어를 못 받는 것 같았는데, 그게 이번 드라마에서 곪아 터진 게 아닌가 싶네요. 데어데블이나 제시카 존스 처음 나왔을 때 마치 마블 세계관에 뭔가 큰 바람을 일으킬 것 같았던 기대가 무색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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