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vs 비오란테 ゴジラvsビオランテ (1989) by 멧가비


84년 전작에서 죽은(것으로 여겨진) 고지라의 세포를 병기 개발에 이용하려는 세력. 그리고 먼저 보낸 딸을 잊지 않으려는 일종의 상징으로 역시 고지라의 세포를 유용하는 과학자 시라가미. 선악을 논할 수 없는 회색 영역에서의 인간의 눈 먼 욕망이 또 고지라를 불러온다는 이야기.


극장용 괴수 영화는 어차피 괴수가 본격적으로 파괴를 시작하거나 다른 괴수와 만나 결투를 벌이는 부분부터가 핵심. 냉정히 말해, 인간 파트는 시간을 얼마나 잘 때우느냐 하는 부속품 쯤으로 볼 수 있다. 괴수가 등장하기 까지 상상력을 자극하고 분위기를 조성해서 괴수의 등장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바람잡이 역할이라는 거지. 역설적으로 영화의 재미를 완성하는 게 바로 그 부속품에서 판가름 난다. 이 영화는 그 부분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멜로 드라마를 삽입해 인간이 괴수를 탄생시키는 부분에서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고지라에 맞서는 "비오란테"라는 식물 괴수가 바로 자식 잃은 아비의 손에서 탄생한 일종의 "사생아 괴물". 테스토스테론으로 똘똘 뭉친 고지라의 적수인데 느닷없이 식물성 괴수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재미가 나온다. 비오란테는 마치 미국 B급 호러물의 불쾌한 살인식물을 연상케 한다. 62년작 [킹콩 대 고지라]에 이어, 또 한 번 동서양 매치가 성사된 셈이다. 식물이라고 무시했더니 이 놈이 그 고지라의 돌덩이 같은 몸을 꿰뚫는다!


본작에서 첫 등장해 이후 세 편에 더 연달아 등장하는 초능력 소녀 캐릭터 사에구사 미키는 80년대 당시 유리 겔러가 일으킨 초능력 붐에서 영향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중에 나올 "헤이세이 가메라 삼부작"에 영감을 줬을 중요한 설정이다.


고지라의 오사카 행군 시퀀스는 원점 회귀이자 오마주. 비와 어둠에 가려져 희번득한 눈깔만 내보인 채 폭우를 뚫고 걷는 장면은 마치 54년의 첫 영화를 그대로 리마스터링한 느낌 마저 들 정도.


중요한 설정의 등장이나 디테일한 재미와는 별개로 영화의 구성은 이상하다. 고지라와 비오란테의 2차전, 즉 하이라이트가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인간의 주먹 싸움. 사족이다. 거하게 마시고 헤어지는 회식 자리에서 "한 잔만 더"라며 붙잡고 늘어지는 직속 상급자의 추태와도 같다. 비오란테에게 패한 고지라가 죽지도 않고 멀쩡히 일어나 터덜터덜 "그냥" 바다로 돌아가는 결말도 김빠진다.


특촬 영화로서 많은 영감과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관객들로부터 좋게 평가받지 못한 이유 역시 뚜렷하다. 시라가미 부녀의 비극 혹은 자위대의 액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서 비중을 몰아줬더라면 좋았을지 모르겠다.






연출 각본 오오모리 카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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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일본의 국민 배우 중 하나인 스즈키 쿄카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특촬 영화로서는 다른 의미로 희귀작이기도 하다.


- 유명한 고지라 테마가 락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어 배경에 깔린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주 신나는 비트로.



덧글

  • rumic71 2017/08/29 15:44 #

    VS 시리즈 중에는 제일 좋아합니다. 오히려 킹기드라편은 좀 유치했지요.
  • 멧가비 2017/08/30 15:34 #

    유치 까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헤이세이 시리즈 중에선 톤이 좀 튀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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