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Brazil (1985) aka 여인의 음모 by 멧가비


주인공 샘 라우리, 안정적인 공무원이며 홀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은 남자. 삶에 있어서 특별히 더 무언가를 가지려 노력하기 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SF 주인공치고는 현실 인물과도 같은 소시민이다. 그런 그에게 있는 단 하나의, 그러나 너무 추상적인 고민을 찾자면, "자연스러운 것"이 주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 한 가지가 그의 삶 전체를 부정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라고는 공장 굴뚝에 그려진 그림으로나 볼 수 있는 회색의 콘크리트 도시. 집은 맘 편히 쉬는 대신 숨막히는 관료제 세계관의 또 다른 통제 대상일 뿐이며, 하나 뿐인 혈육인 어머니는 자연스러운 노화를 거부하고 진짜 얼굴을 조금씩 가짜로 교체하고 있다. 즉, 샘에게는 돌아갈 곳은 커녕 그가 태어난 "자궁"마저 상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밤에 꾸는 꿈 뿐. 날개 단 은빛의 기사가 되어 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꿈은 어쩌면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유다. 때문에 그 꿈에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에게 집착하는 것이 이해된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꽉막힌 세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던 샘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의 머릿속이다. 체제의 통제가 도를 넘어 그를 자의식 속으로 날려버린 것인데, 넋이 나간 샘이 영원히 꾸는 꿈이 행복한 사정몽(射精夢)일지 혹은 끔찍한 악몽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탈출한다"는 그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일지 배드엔딩일지는 영화를 수십 번 반복해 봐도 영원히 정의내리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사실은 영화의 처음부터가 이미 다른 세상의 샘 라우리가 꾸는 자각몽이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꿈에 그리던 여인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나, 그의 탈출에 대한 욕망을 의인화한 듯한 배관공 슈퍼히어로 "터틀"씨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는 구석도 있으니 말이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것 중 파란 하늘보다 잿빛의 콘크리트 건물들 면적이 더 크다면, 난 그것을 디스토피아로 규정한다.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생긴 가치관이다. 그러고 보니 가만 생각해보면 그 디스토피아는 이미 와 있질 않은가.




연출 각본 테리 길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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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쓸쓸한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범 우주적 스케일 앞에 쓸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너무 초라하진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카산드라의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는 [브라질]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지. '브라질'의 라우리 부인. 라우리 부인의 마지막 모습이 결국 카산드라이진 않을까, 하는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