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by 멧가비


"후속작"이란 건 크게 두 종류다. 전작의 설정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개진하는 경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주로 그러하고 [007] 시리즈는 극단적으로 그러하다. 또 하나의 부류는 철저하게 전작에 종속적인 경우. 이 영화가 그렇다.


리들리 스콧이 깔아 놓은 디스토피아 비전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전작의 '릭 데커드'와 넥서스 모델들의 후일담을 다루는 영화. 드니 빌뇌브가 전작의 "흉내"를 내리란 건 시작부터 자명했다. 여기서 걱정이 시작된다. 굳이 전작의 흉내까지 가지 않아도 빌뇌브는 원체 "있는 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게, 내가 봐 온 그의 영화들에 대한 인상이었으니까.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주는 시청각적 매력은, 80년대 특유의 근본없이 조야한 분위기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분위기가 빚어내는 독특한 엇박자의 맛이었다. 그 들쑥날쑥한 요소들의 충돌이 오히려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빌뇌브는 그의 전작들처럼 유려하고 적막한 느낌에 집착한다. 저 세계관의 고요한 분위기는 낯설다. 30년 세월이 그 곳을 그렇게 가라앉혔노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빌뇌브 영화의 쓸 데 없이 많은 여백. 재미가 없진 않으나 재미와 재미 사이의 거리를 너무 멀게 잡음으로써 오는 물리적인 지루함을 뭔가 지적인 것처럼 속이는 개수작은 그의 특기다. 2049의 세계관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경고였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철저히 데커드와 넥서스들만의 멜로 드라마로, 다루는 이야기의 크기가 오히려작아졌다. 내용물은 작은데 볼륨은 더 커 보이기 위해선 당연히 질소 포장이 필수. 과자는 맛있는데 질소가 너무 많아 질식할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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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노골적으로 전작의 '로이 배티'와 대척점에 서도록 고안된 캐릭터다. 로이가 주인공에게 쫓기는 레플리컨트였다면 K는 그 자신이 주인공으로서 쫓는 입장. 단지 포지션의 대비만이 아니다. 로이(와 그가 이끄는 넥서스6 탈주자 무리)의 지구 잠입 그 궁극적인 목적은 권리 주장이었다. 인간과 다르지 않으니 인간과 같은 수명 역시 누릴 권리가 있다는 거지. 가짜 기억이 심어지기도 하는 레플리컨트지만 인간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봐 왔다는 그의 유언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K는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넥서스9"로서의 아주 조금 나은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인간성을 증명, 아니 스스로 확인한다.


로이와 K의 차이는 그들이 "누굴 만났는가"로 명백히 드러난다. 로이는 레플리컨트들의 신체 "부품"을 제작하는 한니발 추를 만났다. 인간과 레플리컨트들의 차이점은 신체의 물리적 한계(=수명) 뿐이었음에 대한 상징이다. 반면 K는 기억을 디자인하는 스텔라인을 만난다. 이미 넥서스9로서는 신체 자체는 인간보다 나으면 나았지 한계랄 것이 없기 때문. K를 번뇌에 빠뜨리고 속이고 또한 각성시킨 것은 모두 "기억"과 관련한 것들이다. K가 자신의 기억을 두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했던 것과 달리 로이는 확실한 자신의 기억을 유언으로 남겼다.


로이가 타이렐 회장을 직접 살해한 일과, K가 자신의 부모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 한 일 역시 뚜렷하게 대비된다. 사소하게는 매춘(賣春) 레플리컨트와의 협력 관계에서도 둘은 다르다. 이렇게 의도적이고 노골적으로 로이 배티와 명암처럼 대비되는 K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 빌뇌브만의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스콧의)블레이드 러너에 관한 블레이드 영화 쯤으로 남는다.


K 자체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다. 앞뒤가 같아 모순이 없던 데커드와 달리, K는 업무와 사생활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묘사 안에 표리부동함을 드러내는데,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하고 상사의 말에도 무표정하게 "레플리컨트로서" 복종하는 그가 집에 돌아와 보여주는 모습은 자유의지와 모순을 가진 여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레플리컨트를 만들어 자신들의 노동력을 대체하듯, K는 (레플리컨트보다도 더 하위 계급일 게 뻔한) 인공지능 메이트를 통해 가족의 공백을 메꾼다. 인간으로부터 "껍데기(skin job)"라며 멸시받고 구형 모델들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 그 자신도, "사랑을 나눈다"고 믿는(껍데기 조차도 없는) 상대를 스위치 하나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반면 2049의 데커드는 실망스럽다. 그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인물인데다가 전작 마지막에 레이첼을 동반한 탈주가 남긴 여운을 깨뜨리기 위해 나타난 인물이다. 레이첼의 복각판이 나타날 때, 보는 나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지 정작 데커드 당사자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무언가와는 다르다. 그 시점에서 완벽히 무너지던가, 아니면 [백발마녀전] 2편의 장국영처럼 이야기를 종결짓는 역할 정도로만 잠깐 등장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을 고사했더라면 후속작은 훨씬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거나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둘 다 지금의 영화보다는 낫다.



개인적으로는 데커드 인간설을 지지해 왔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나 명확하게 언급하진 않지만 대체적인 묘사가 "데커드는 인간이다"라고 암암리에 인정하는 쪽에 가까워서 그것 하나는 맘에 든다.





연출 드니 빌뇌브
각본 햄톤 팬커, 마이클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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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오마주 하기도 했던 [그녀]의 영향을 이 영화에서 찾긴 어렵지 않다. 선후배 작품이 교환하는 상호 모티브를 발견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며 재미있는 감상법 중 하나다. 반면 [내추럴 시티]와도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인상을 받기도 한 건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당황스럽다고 해야할지.


영화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포진되어 있다는 점. 거리의 매춘부나 위안용 A.I.처럼 비보호에 노출된 약자가 있는가 하면 블레이드 러너 국장이나 레플리컨트 레지스탕스의 대장 등 주도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도 있다. 그 와중에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역시나 '러브'. 언뜻 등장은 전작의 '레이첼'처럼 순종적인 인물인 듯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상사에게 조차 감추는 자의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위태위태하게 관찰하는 맛이 있다. 비록 두 주인공은 역시나 남성에게 돌아갔지만, 하드보일드 장르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인물형에 여성 배우들을 포진함으로써 최소한의 밸런스를 맞추긴 했다고 봐야겠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7/10/13 18:46 #

    지루함을 뭔가 지적인 것처럼 속이는 개수작
    ㅋㅋㅋㅋㅋ 격렬하게 동의합니닼
  • 멧가비 2017/10/14 13:36 #

    매번 그러는데 매번 속네요
  • Rorschach 2017/10/15 01:06 #

    프레임 하나하나에 리들리 스콧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공을 들인 게 보여서 좋았네요. [로그 원]과 같은
    느낌이랄까나. 전작의 향수를 기술력으로 살려낸 듯한 느낌.

    앞으로 명작들의 시퀄은 이렇게만 뽑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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