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의 게임 Gerald's Game (2017) by 멧가비


침대 위에 갇혀버린 제시에게 그 자신의 내면이 말을 걸어온다. 죄책감이나 트라우마, 증오, 분노, 두려움을 대변하는 쪽. 그리고 자기연민과 방어기제를 대변하는 쪽. 해가 달에 가려지듯 그렇게 무의식으로 가려져 있던 언젠가의 기억이 제시를 찾아오면서 공포는 시작된다. 아니, 반대로 문득 찾아온 공포가 제시의 기억을 해방시킨 쪽에 가깝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가끔 전혀 무관한 무언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섬세하게 캐치해냈다.


들개의 물리적 공포, 해가 진 이후 나타난 문라이트맨의 오컬트적 공포 등 버라이어티한 호러 구성. 이런 장르적 공포의 끝에 찾아오는 건 제시의 내면에서 스스로 발생한 심리적 압박감이다. 외부에서 찾아온 공포가 결국 내면의 공포를 깨우고, 그 끝에는 착취적인 남성성에 대한 근원적 트라우마가 자리잡은 흐름이, 언뜻 뜬금없지만 나쁘지 않다. 결국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기도 하고.


개기일식이나 월광(月光) 등 상징적인 장치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은유하는지는 분석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구체적인 은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제시를 통해 관객을 자극하는 건 부수적인 은유 장치들이 아니라 제시의 트라우마가 현시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통용되는 현실적인 위협들이라는 점이다.


그 끝이 어찌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결말을 맞았다는 점만으로도, 메시지에 대한 이해 없이도 충분히 장르적으로 좋은 공포 영화다.






연출 마이크 플래너건
각본 마이크 플래너건
원작 스티븐 킹 (동명 소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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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는 들개를 보며 살인견 [쿠조]를 언급하는데, 이 역시 스티븐킹의 캐릭터다.
스티븐 킹 세계관에 스티븐 킹이 언급되는 메타 조크라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