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EU 탐구 - DC 확장 유니버스의 문제점 2 by 멧가비


이번 [저스티스 리그]에서 캐릭터들이 평면적인 기능성만 갖춘 "게임 NPC"화 된 것에 대해, "분량 조절의 실패"라고 단순히 평가 내리는 건 오히려 면죄부에 가깝다.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그대로인 이상, 네 시간 짜리 영화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배트맨 대 슈퍼맨]은 단 둘이 나눠먹기에도 부족한 분량이었던가. 마블의 [시빌 워]에서 블랙 팬서나 스파이더맨이 관객에게 눈도장 찍은 비결이 분량이었나. 단지 분량이 문제라면 원톱 주인공 영화는 무조건 걸작이어야 하는데, 어디 실제로 그러한가.


이 시리즈에 따라붙는 말 중 하나는 "재미가 없진 않다"는 것. 새로운 인물들이 출현하거나, 익숙한 인물들이 멋지게 등장해서 CG 필살기를 쓰고 뭔가를 부수면 당연히 기본적인 "재미"는 따라온다. 아니 당장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경만으로도 그 장면만큼은 재미있다. 문제는 그 등장인물들을 쓰는 방식이다.


캐릭터들의 말이나 행동에 허술함이 너무 많아 납득이 안 될 수준 까지 간다는 것. 지나고 나서 "그 때 왜 그랬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영화를 감상하면서 "저거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 허술함의 구멍이 너무 커 관객을 잠깐이라도 속일 수 없을 지경이라는 말이다. 스토리상의 판단미스나 실책이 아닌, 각본 단계에서 이미 상황에 전혀 걸맞지 않는 생각과 언행. 여기에 관객은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캐릭터는 "살아있다"는 느낌, 즉 "존재감"을 잃는다. 존재감을 잃은 코믹북 캐릭터란 그저 할로윈 코스튬을 갖춰 입은 움직이는 마네킹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캐릭터들이 텅 비어 보이거나 한심하게 느껴진다. 물론 각자의 관점과 각자의 관람 방식이 다 다르지만, 그래도 코믹북 캐릭터를 가져다 쓰는 실사영화라 함은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멋짐"을 즐기는 목적이 그 기저에 일정 퍼센티지 이상 깔려있을 수 밖에 없다. 한 편의 영화를 즐김에 있어서 캐릭터를 중심으로 소비해야할지, 캐릭터 외의 서사의 치밀함이나 미장센에 집중해야 할지, 관객은 본능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그런 캐릭터 무비에서 캐릭터들이 매력 없고 한심하면, 영화가 나오는 족족 똑같은 비판 역시 끊이질 않는다.


캐릭터들이 멍청하고 한심한데도 사건은 각본대로 흘러가 어떻게든 해결은 되니 통쾌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 캐릭터 대신 각본가와 감독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건을 억지로 끌고가 골인점에 가져다 놓기만 한다는 느낌이 가장 나쁘다. 분량 조절이나 슬로우 모션 남발 등의 사소한 것은 아무래도 좋다. 기본적인 센스의 문제다. 캐릭터의 어떤 면에 관객이 흥분하는지,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를 얼마나 채워주고 얼마나 배신할지를 조율하는 센스 말이다.


어떻게든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적당한 기대치의 관객에게라면, 상기한 문제점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대치를 높인 관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느 누구도 코믹북 실사 영화에 아카데미 수상작을 기대하진 않는다. 갑자기 세상에 없던 새로운 영화를 만들라고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이미 과포화 상태. 정석적인 작법, 흥행 공식이라는 모범 답안이 이미 시장에 수두룩하게 나와 있단 소리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 수십년의 역사가 쌓인 코믹북들을 조사해 독자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캐릭터의 말과 행동, 그것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적당히 재배치만 해도 여태까지의 영화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저 그런 정도의 재미가 아닌, 그 보다 더 좋을 수 있었던 가능성을 깡그리 날려버린 것에 비판자들의 역점이 있다.


냉정하게 말 해, DC 필름 유니버스 영화 네 편을 통틀어 "잘 만들었다"고 할만한 건 원더우먼과 할리 퀸 단 둘 뿐이다. 그나마 할리 퀸은 캐릭터성 자체보다는 뷰티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크고, 원더우먼은 잘 만든 캐릭터성을 워너 스스로 다시 무너뜨리려는 조짐이 보인다. 차라리 순수 여성팀인 '버즈 오브 프레이'를 결성하는 기획이 있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마블과 DC 양 쪽을 모두 응원하는 오랜 팬에게 있어서, 한 쪽은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 잡는데 다른 한 쪽은 삽질을 하다못해 생떼를 쓰듯 안 되는 걸 계속 반복하는 모습이 썩 마음 편치만은 않다.



덧글

  • 잉그램 2017/11/18 20:10 #

    크립토나이트 딜도에 엉덩이가 박혀서 절벽에서 골골하던 슈퍼맨이 겨우겨우 살아서 올라왔더니 정상까지 왜 못올라갔냐고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 멧가비 2017/11/18 20:22 #

    정상까지 길도 잘 나 있고 장비도 다 갖췄는데, 살아서 올라오긴 커녕 아직도 절벽 제자리에서 골골하고 있으며 그 딜도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넣었습니다. 비판할 수 있지요.
    정상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오독하신 듯.
  • 잉그램 2017/11/18 20:31 #

    그냥 무슨말을 해도 깔생각만 하시는거 아니가요?
  • 멧가비 2017/11/18 20:34 #

    평가는 자기 주관으로 하는 거지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바뀌어야 하나요?
  • 잉그램 2017/11/18 20:38 #

    비판할려면 비판받을 각오는 해야겠죠.
  • 멧가비 2017/11/18 20:44 #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와, 그 소비자의 평가를 다른 소비자가 (왜 내 말 듣고 고치지 않느냐며) 교정하려 드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인데 그 구분이 어렵진 않을 겁니다.
    내 블로그 글을 돈 받고 판 적은 없지만, 하고 싶으면 해요.
  • 잉그램 2017/11/18 20:47 #

    듣고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 lelelelele 2017/11/19 14:26 #

    작품하나 비판하려면, 동시에 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군요.. 만약 어떤 작품을 비판이 아닌 비난해야 한다면 정말 큰 각오해야할 거 같네요..ㅜ
  • 잉그램 2017/11/19 14:35 #

    당연하죠.
  • lelelelele 2017/11/19 20:12 #

    글쎄요.. 토론이라면 모를까, 컨텐츠에 관한 개인평을 작성하는데 무슨 각오씩이나 해야할지요.
    전 동의하기 힘든 의견이네요.
    다른분 블로그에서 더 길게 댓글다는 것도 너무 민폐같아서 이만 쓰겠습니다..
  • rumic71 2017/11/18 20:44 #

    그냥 자기네가 만든 원작대로만 만들어도 성공을 거둘 터인데 왜 이리 중2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동굴아저씨 2017/11/18 23:33 #

    이걸 돈내고 봤다면 매우 돈이 아까웠을 겁니다.
    먹는 거에 비유를 하자면 콩나물 밥을 했는데 콩나물 밥에서 비린내가 납니다.
  • 케이즈 2017/11/20 01:39 #

    조급해서 자꾸 발을 헛딛는건 둘째로 미뤄두더라도....

    이 큰 프로젝트를 이끌고 갈만한 구체적인 스토리 플롯이 있는지가 가장 궁금하더군요.
    수어사이드스쿼드는 그래도 쉴드가 통했죠. 어차피 외전스토리니까요.할리퀸 하나 건졌다는 것 만으로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고, 여기서 보여줬던 문제점을 다음에 보완하면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비슷한 문제들이 답습되고, 전에 보여줬던 장점은 제자리수준에서 답보하거나 못미치는 수준인데,
    문제는 슈퍼맨과 배트맨이라는 가장 인기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소모하면서도 이정도에 그친다는거죠.

    어쩌면 누구네들 말처럼 꽤 많은 관객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았고, 때문에 그정도 비슷하게만 만들면 봐줄거라는 안일함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난 괜찮았는데?' '난 재밌게 봤는데?' -> 네! 저번에 재밌게 보셨던 분들을 위해서 비슷하게 만들어봤습니다!

    같은 실수가 계속 반복되면 보통 실력이라고 평가하죠. 비슷한 수준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으면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짚어야했을텐데 이미 무너진 캐릭터들과 파워밸런스를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살려낼지가 궁금해집니다.
    아쿠아맨이 다음 작품으로 대기중이던데, 과연 큰 그림을 계속 이어갈만한 스토리라인을 생각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일단 캐릭터를 소비하면서라도 근근히 이어나가서 어떻게든 세계관부터 만들려는건지 여러모로 기대되긴 하네요.

    차라리 플래쉬포인트를 써먹어서 엑스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계관을 정리하는 것도 참 매력적으로 보이던데, 그건 다른 이야기로 써먹는다는 썰이 있어서.
  • 멧가비 2017/11/22 15:58 #

    그런에 엑스멘 세계관은 정리되긴 한 건가요 그거...
  • 케이즈 2017/11/22 17:18 #

    데오퓨 한정으로만 세계관 리부트 시킨다는 설정은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 이후 행보야 둘째치더라도....
  • 멧가비 2017/11/23 14:56 #

    데오퓨 자체만 보면 상당히 좋죠. 개인적으론 폭스 엑스맨 영화 탑3 안에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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