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리그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2003) by 멧가비


"VS 무비" 혹은 "팀 업 무비" 등으로 속칭하는, 각자 활동하던 유명한 캐릭터들을 한 작품에 모으는 기획은 1943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주선으로 '프랑켄슈타인 괴물'과 '늑대인간'의 만남이 성사된 이후 꽤 오랜 역사를 이어 온 비즈니스다. 현대에 와서는, 유니버설 호러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들의 동창회 격인 1987년작 [악마군단](The Monster Squad), 그리고 그것을 맛깔나게 잘 베낀 남기남 감독의 [영구와 땡칠이] 등이 그나마 그 이름이 기억되는 정도.
(일본 특촬 시장에서는 토에이 프로덕션이 매년 제작하는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B급 이종격투 쇼의 시대가 희미한 역사로 남고, 2010년대의 팀 업 무비라 함은 기획 단계부터 이미 관객을 흥분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마블 스튜디오에 의해) 그 위치가 격상했는데, 본작은(휴 잭맨의 [반 헬싱]과 함께) 그 사이 어딘가 쯤에 있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저스] 붐 당시에는 "XX판 어벤저스"라는 식으로 거물들이 모이는 상황을 유쾌하게 빗댄 농담이 유행했었는데, 사실 "XX판 젠틀맨 리그"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물론 흥행한 놈이 장땡이지만.


등장 인물 리스트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앨런 쿼터메인'이나 '도리안 그레이' 등 다소 낯선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네모 선장', '톰 소여' 등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면 최소한 이름 쯤은 친숙한 자들도 있다.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고는 전무한, 팀으로서는 그야말로 근본 없는 조합. 그러나 영화는 빅토리아 양식, 스팀펑크 등 아름다운 시각적 장치 위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난 인물들을 줄 세워 "근본 없음의 미학"을 기묘하게 완성한다.


기존의 서사가 있던 캐릭터라고 해서 누구 하나 소홀히 다루는 법 없이 모두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 개성들이 모인 팀의 외인구단적 성격 역시 놓치지 않는다. 사냥꾼은 멀리서 총을 쏘고, 선장은 배를 몰고, 투명인간은 잠입한다. 불사신은 선두에서 총알을 받아내며 괴물은 또 다른 괴물에 맞선다. 각자의 능력에 맞춰 역할이 배분되는 시나리오는 현대의 팁 업 무비들도 참고하면 좋을 교과서적 구성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먼저 본 후 원작을 접했는데, [왓치맨] 때도 그랬듯이, 전설로 남은 원작보다 오히려 혹평 일색이었던 실사 영화 쪽을 더 선호하는 케이스. 앨런 무어의 과격한 반사회적 기질보다는 영화의 여유로운 태도와 고상한 탐미주의가 더 맘에 든다.


오히려 지금 같아서는 스토리의 연결성 없이 "유명 문학의 인물들을 모은다"는 컨셉 하나만으로 시리즈화 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일텐데, 역시나 한 번의 흥행 실패가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뼈 아프겠지. 흥행도 흥행이거니와, 상기했다시피 다소 과도기적인 면이 있어 장르에 익숙치 않았을 관객들에 의해 평가절하 된 면이 있다. 간혹 들리는 '폭스'의 리부트 기획을 기대해도 될런지.





연출 스티브 노링턴
각본 제임스 로빈슨
원작 앨런 무어 (동명 코믹스, DC 코믹스, 1999)
숀 코너리의 실사 영화 공식 은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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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2017-11-29 15:25:02 #

    ... 하고 자빠졌는지 치사하게 안 보여준다. [어벤저스] 수준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주특기 뽐내는 원샷 한 번 씩은 제대로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래서 [젠틀맨 리그]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는 거다. 인챈트리스는 좋은데 다른 놈은 진짜 덩치만 큰 쪼다같다. 기량 떨어진 시절의 최홍만처럼 오지마 킥은 대체 왜 하고 자 ... more

덧글

  • 포스21 2017/11/29 17:14 #

    재밌게 본 기억이 나는데 흥행 실패였나요? 역시 숀코네리옹이 죽는 걸로 끝나서 그랬나? 살아서 후속작을 기약했다면 좀 달랐을듯...
  • 멧가비 2017/11/29 19:40 #

    그 전에 숀 코너리 네임밸류 치고는 분량 자체가 이미 적었죠. 전 오히려 그 점이 좋았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그게 흥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긴 하네요.
  • Sakiel 2017/11/29 22:03 #

    저도 개인적으론 재밌게 봤는데, 최근에 다시 보니 생각보다 세련된 영화였던 듯. 이쁘게 다시 리부트하면 잘 뽑힐 거 같기도 한데 말이죠.
  • 멧가비 2017/11/30 01:52 #

    리부트 소식이 가끔 들렸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되진 않나봐요.
  • 잠본이 2017/12/01 02:04 #

    웰스의 우주전쟁까지 크로스되는 2탄이 영화화되었더라면 꽤 기막혔을텐데 아쉬운 일이죠.
  • 멧가비 2017/12/01 08:54 #

    톰 크루즈의 젠틀맨리그를 봤을 수도 있는 거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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