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만지 Jumanji (1995) by 멧가비


난데없이 달려오는 성난 짐승들, 살인 식물 그리고 무자비한 인간 사냥꾼. 정글을 소재로 한 '보드 게임'의 트랩들이 현실로 구현된다는 상상, "실사화"에 대한 실사 영화다. 굴리고, 달아나고, 싸운다는 게임 감각. 그러나 그런 장르적인 재미를 떠나서도, 영화는 궁극의 인생 시뮬레이션이기도 하다.


'주만지'라는 게임의 진정한 마법은 게임 과정 자체가 아닌, 게임이 끝난 후에 작동한다. 말(piece)이 골인점에 도착하고 주만지 사인을 외치면 게임 시작 전으로 모든 게 돌아가버린다는 극단적인 룰. 그 어떤 SF 문학, 영화보다도 감각의 체험과 시간적 회수 범위를 넓게 잡은 가상현실이다.


상상하기 나름이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 부터 게임을 끝내기 전 까지는 어떠한 체험, 어떠한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인생을 방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앨런이 마음만 먹었다면 주디, 피터 남매를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게 조작하는 것이 가능했을 터. 영화의 등급과 장르에 가려 눈치챌 수 없지만, 의도에 따라서는 인류의 길흉화복을 주무를 수 있는 검은 마법 도구인 셈이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는, 닫힌 시간 구역이라는 설정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 의도를 변질시킬 수 있는 초월적 도구라는 점에서는 [도라에몽]이 떠오른다.


반대로, 타인의 의도에 의해 내 삶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는 상상 역시 섬뜩하다. 앨런은 다시 살게 된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주디, 피터 남매의 운명을 전보다 낫게 바꿔준다. 바꾼다기 보다는 "교정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 현재의 삶, 그 과거 어느 한 지점을 교정해 지금의 삶보다 낫게 만든다면 현재까지 살아온 삶의 경험과 기억, 누적된 자아 모두를 무(無)로 되돌리는 것이 괜찮을 수 있을까. 결과만 좋다면 내 삶과 존재의 여탈권을 타인이 쥐어도 좋을 것인가.



작중 TV 화면을 통해 주디 갤런드 주연의 1939년작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이 삽입된다. 단순히 사나운 원숭이들이라는 소재에 대한 조크일 수도 있으나, 생각해보면 도로시 역시 긴 꿈을 꾸고 현실로(원점으로) 돌아갔으니, 그 상상력의 레퍼런스로서 경의를 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출 조 존스턴
각본 그렉 테일러, 짐 스트레인
원작 크리스 반 알스버그 (동명 단편 동화, 1981)


덧글

  • 포스21 2017/12/08 17:46 #

    주만지를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었군요. ^^
  • 멧가비 2017/12/08 21:42 #

    도라에몽 보면서도 나쁜 생각 한번씩들 해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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