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에드만 Toni Erdman (2016) by 멧가비


성장한 자식은 자신만의 눈높이에서 부모를 평가하고 실망한다. 부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외면하는 자식에게 섭섭하다. 자식은 자신이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가치를 강요하는 부모가 밉고, 부모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대신 사회가 원하는대로의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자식 때문에 아프다.


가족이기에 서로에 대한 이상향적 기대치는 다른 누구에게보다 높다. 가족은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를 지운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함께하지 않아도 언제나 함께인, 멀리 있어도 늘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에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TV처럼 편리하지 않다. 가족은 가족 아닌 다른 누군가가 줄 수 없는 것을 나누지만, 딱 그 만큼 걸리적 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족 관계란 늘 조금씩은 비극적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배인 애수(哀愁)는, 어느 가족이든 많든 적든 실패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홉 번 미워도 한 번의 사랑으로 나머지를 채울 수 있는 것이 또한 가족이다. 영화는 그 한 번에 주목한다. 빈프리트의 딸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 표현이 이네스가 받아줄 수 있는 타이밍에 맞아떨어진 그 한 순간, 그런 한 순간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 가족의 서로에 대한 애는이겠지.


또한 영화는 가족 관계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이야기한다. 지어낸 이야기 속 등장인물처럼 입장과 퇴장이 늘 그림 좋게 맞물리지만은 않는 것이 현실의 인간 관계. 관점이 다르고 결이 다르고 주파수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현실에서는 늘 감내하며 살아야 하질 않나. 영화 속 빈프리트, 아니 토니 에드만의 장난이 언제나 먹히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삶이라는 과정을 집행하는 태도의 부딪힘이기도 하다. 낙관과 진지함. 이 대립각은 서로에게, 유머라는 이름의 훼방과 성실함이라는 이름의 엄숙주의로 각각 불편하게 비춰진다. 그러나 가족은,(그렇다 결국 다시 가족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렇게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서로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서로가 너무 거추장스러운 관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좋은, 거리를 두고 기다려주기만 해도 좋을 관계이기도 하다.


뻐드렁니에 바구니 모자를 쓴 이네스의 모습을, 빈프리트는 결국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순간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것이 또한 가족의 비극. 가족이 늘 서로를 실망시키고 슬프게 하는 건, 영원히 헤어질 언젠가의 슬픔을 미리 조금씩 나눠서 소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출 각본 마렌 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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