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Star Wars: The Last Jedi (2017) by 멧가비


일찌기 요다는 말했다. "모험, 흥분, 제다이는 그런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라고. 역시 그랜드 마스터. 수십 년의 미래를 넘어 이 영화를 예언하셨던 것이다.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는 이제 그 전 스타워즈 영화들과 팬덤이 마음을 뒀던 것들을 모두 버린다. 마치 영화 자신과 영화가 말하는 '포스'가 하나 된, "물아일체"의 느낌. 


흑백을 가르고 선악에 대해 논함을 멈춘다. 멋있으려 하지 않는다. 세력 간 이데올로기가 충돌하지 않는다. 힘으로 힘을 제압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놓을 뿐이다. "싸워서 쳐부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던져질 때 골이 띵해진다. 눈치 보지 않는 너무나 태연한 개종(改宗) 선언, 그러나 말한 바를 모두 실천해버리니 인정할 수 밖에. 누군가를 쳐부숴서 자신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 이는 카일로 렌 뿐이다.


용감한 기사, 능글맞은 재주꾼, 고결한 공주 등이 없다. 운명처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인 인간들이, 인간다운 이야기를 한다. 포 다메론은, 제도권의 것이라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나르시스트 히피같다. 핀은 투쟁에 휘말린 노동자 계급을 은유. 루크 스카이워커는 PTSD에 시달리는 상이용사처럼 묘사되며, 레이와 카일로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에서 방황하던 청춘들이다. 선과 악 같은 거창한 것을 토론하기엔 당장 내 정체성부터 흔들리고 있는 청춘 말이다. 감독 라이언 존스에게는 [브릭]의 우주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맘에 드는 인물 묘사는 역시 루크. 품위 있는 몰락 귀족 보다는 괴팍한 은둔 노인, 오비완 케노비보다는 요다를 더 닮아버렸다. 시스템의 한계에 절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해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는 점이 같다. 나는 늘 루크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오비완이 아니라 요다라고 주장했는데, 그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좋다. 영화가 내내 주장하던 비폭력주의를 가장 완벽히 실천한 인물이기도 하다. 루크는 단 한 번도 광선검으로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는다. 담당 캐스팅 디렉터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오비완이 그랬듯이, 자신을 버림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미래를 넘긴다. 반쪽 짜리 제다이요 실패한 마스터였으나, 선대들을 능가하는 구도자였다.


레이와 루크의 관계 묘사가 좋다. 콰이곤과 오비완처럼 "스타워즈스러운" 사제관계도 깨진다. 영화가 양식미 넘치는 중세 기사 서사시를 버렸듯이, 둘의 관계도 전통적인 사제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더 이상 큰 산처럼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 실망하고, 부모는 어느새 눈높이가 비슷해진 아이를 보며 당황하듯이, 둘은 그렇게 유사부자가 되어 갈등한다. 스네이프 교수의 기억을 들여다 본 해리가 아버지에게 실망했던 것처럼.


물론 내가 알던 "그 스타워즈"가 아닌 모습에 적잖이 낯섦과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레이의 출생에는 특별한 내력이 없음을 밝히고 악의 제왕을 일찍 탈락시킨 것은 어떤 면에서는 최상의 선택이다. 우주 나찌에 대항하는 정의의 레지스탕스라는 흑백의 대립 구도부터가 반복되고 있는데, 그 위의 체스말들마저 똑같은 기보(碁譜)를 그린다면 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의미는 있는가. 지나가는 엑스트라, 마시는 우유 한 잔에도 관련 설정이 다 붙을 정도로 섬세하고 방대한 수백 년 역사의 세계관인데 제다이니 시스니, 혈통이 어쨌느니 같은 이야기에만 영원히 갇혀있는 건 세계관 낭비다. 현실 시간으로도 벌써 약 40 년, 스카이워커 단물 충분히 빨아먹었다. 특히 스노크의 결말은, "이미 사라진 옛 파시스트의 흉내를 내봤자 새 역사에 낄 자리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거시적인 제목의 의미를 사실은 가족 싸움이라는 좁은 의미로 가두는 것을 멈출 때가 온 것. 스카이워커를 멸문시키고 전설의 광선검을 파괴한 것은 그 선언일 것이다. 이제 스타워즈는 선택받은 누구만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든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좀 더 느슨한 틀이라는 선언 말이다. 다스 베이더, 황제, 한 솔로 등을 능가할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할 바에야 아예 범인(凡人)들의 이야기로 새 삼부작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설픈 흉내보다는 빠른 포기와 방향 전환이 낫다.


언젠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면 지금이 좋다. 지금 바뀔 거라면 이런 식으로가 좋다. 영화의 묘한 균열감,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은 덜컹거림은 성장통에 다름 아니다.




연출 각본 라이언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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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쇼몽 기법이 연출에 일부 사용된 걸 보고, 조지 루카스가 막후로 돌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만족한 것과 별개로, EU를 소비해 온 팬들의 실망감은 충분히 타당한 면이 있다.


- 역시나 번역은 전반적으로 개판인 가운데, 요다의 도치법을 구현하려 시도한 것 하나는 좋다. 하지만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을텐데 거기 까진 안 하더라. 의욕은 좋았으나 역시나 실력이 문제.


- 루크는 기력이 쇠한 게 아니라 분명 카일로의 참격에 죽었을 것으로 본다. 레이와 교감한 카일로의 손에 빗물이 묻어있다던가, 레이와 카일로가 교감하면서 손가락의 감촉을 분명하게 느끼는 듯한 묘사 등, 포스의 교감만으로 물리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알기 쉬운 묘사들이 있었다. 그에 따르자면, 직접 상처는 나지 않더라도 데미지는 정확히 들어갔을 것이다.


- 사실상 한, 레이아, 루크 3인방의 시대를 완벽히 종결한 영화다. 혼자 남을 추바카가 슬프다.


- "I've got a bad feeling about this" 대사가 있었던가. 못 들은 것 같다.


- 루크 무인도 시퀀스 보면서 떠오른 한국 TV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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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이브스 2017/12/16 18:08 #

    근데...카일로 참격 이전에 그 많은 빔포 맞은 걸 생각하면...
  • 멧가비 2017/12/16 18:19 #

    포스를 통해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는 것과 모든 물리적 접촉이 본체와 똑같이 적용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죠. 빔 폭격은 포스와는 무관한 거고요.
  • 나이브스 2017/12/16 18:25 #

    어깨 한번 털어주는 시크함...
  • aascasdsasaxcasdfasf 2017/12/16 23:44 #

    로그원쪽이 어르스러운 스타워즈같다고 생각하는데
  • 슬픈눈빛 2017/12/17 00:16 #

    깨어난 포스에서 했어야 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 멧가비 2017/12/19 15:28 #

    너무 클래식 우려먹는다 싶더니 추진력을 위해 무릎을 꿇었었나 봐요
  • akd637 2017/12/19 10:51 #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해주시네요. 이런 글을 써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루크가 떠날 때는 저는 그 쿵푸팬더에 우그웨이씨가 떠나는 모습이 생각났네요. 물론 포지션을 굳이 따지자면 요다가 우그웨이, 루크가 시푸이고 레이가 포이지만.
  • 멧가비 2017/12/19 15:27 #

    레이=포 딱 들어맞네요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시푸가 요즘 성추행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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