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가정을 하겠는데, 한 무리의 배트맨 팬클럽이 있다. 사회성도 좋고 현실 생활에도 충실한, 그러나 배트맨에 대한 열정 만큼은 뒤지지 않는 건강한 사회인 동호회다. 그들이 모여 파티를 벌인지 수 시간,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흥이 올라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골때리는 배트맨 농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간혹 배트맨 흉내를 못되게 내며 낄낄대고, 코믹스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상상의 스토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 파티의 내용을 기록해서 영화로 만들면 이런 영화가 나올 것이다.
여느 시리즈를 통틀어서도 가장 유능하지만 동시에 가장 못난 배트맨의 등장. 전작 아닌 전작 [레고 무비]의 캐릭터를 일부 계승하면서도 현실의 배트맨 팬들이 지적하는 못난 점들을 한 데 모은 듯한 배트맨이다. 지나친 자기 연민, 무신경함, 열등감, 이기심, 자폐성, 독선 등등. 배트맨이라는 인물을 원자 단위로 분해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원자들의 총합인 캐릭터인데, 그래서 묘하게도 너무나 배트맨스럽다.
그런가하면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에 대한 외전이기도 하다. 배트맨은 과시적이고 조커는 질척댄다. 이것은 자존감 낮은 두 남자의 이야기. 영원한 맞수이자 세기의 단짝인 둘이 자신에게 있어서의 상대방의 의미를 찾아가는 멜로 드라마 쯤 되겠다. 영화는 술 취한 듯 시끌벅적하면서도 배트맨과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통찰을 보여준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말했던, "넌 나를 완성시켜" 대사를 농담처럼 낄낄거리면서도 그 대사가 의미했던 바에 대한 이해도가 해당 영화를 능가한다.
전체적으로 장르 자체에 대한 메타픽션적 해학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단지 레고의 지원을 받은 장난감 광고의 수준을 넘어, 워너-DC 영화 사업부에도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낸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 크리스 맥케이
각본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개봉작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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