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괴담에는 맹독을 가진 양서류나 벌레들을 한 항아리에 담아서 서로 죽이게 한 뒤, 살아남은 최후의 한 마리를 제물로 이용해 누군가를 저주하는 주술, '고독(蠱毒)'이라는 것이 간혹 등장한다. 폭력의 방치와 범죄의 진원, 구조적 모순이 한 데 뒤엉킨 '닫힌 사회(Small Town)'라는 것은 이 고독과 같다.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양분 삼아 순환하듯, 고독같은 사회에서는 폭력과 증오가 해소되지 않은 채 항아리 안에서 서로를 물어 뜯고 중독 시켜 끝내는 치사(致死)의 독을 완성해낸다.
영화는 범죄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그것을 둘러싼 군상들의 맨얼굴을 관객으로 하여금 목격하게 만든다. 항아리 속 사회에서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의 단편들을 담담히 하나씩 꺼내놓는다. 누군가는 분노의 연쇄를 스스로 끊고 삶을 지속하길 바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더 큰 사회의 외면을 핑계로 무법자가 된다. 어느 항아리에나 스스로 고독이 되려는 존재가 있다.
주인공 코리 램버트는 적막하게 스러져가는 "백색의 서부"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한다. 그러나 그 또한 항아리 안의 사람으로서 사회 정의에 대한 사명감이나 폭력으로부터 이웃을 지키겠다는 "Friendly neighborhood" 같은 것이 있을리 만무. 단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한 인간으로서 또는 관찰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주지시킬 뿐이다. 그것은 내일을 담보할 수 있게 만드는 "오늘의 할 일"일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범죄에 대한 혐오를 일부 품었음이 명백하나, 다행히도 그에게는 차가운 심장이 없기에 무차별 복수귀는 되지 못한다.
영화는 그저 하나의 사건을 통해 닫힌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 영광을 얻는 영웅이나 거창한 결말을 제공하지 않는다.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사회의 모순을 교정할 힘이 없는 사람들이 하루를 또 버티며 살아갈 뿐이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적자와도 같은 영화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연출 각본 테일러 셰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