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데스데이 Happy Death Day (2017) by 멧가비


[사랑의 블랙홀]에서 명백히 영향받은 "워너비"이자, 노골적으로 의식한 작위적 안테테제의 영화. 영원히 하루라는 삶이 반복된다면 그것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던 철학적 질문 대신 그것을 뒤집어, 단 한 번이어야할 죽음이 수도 없이 되풀이 된다면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를 탐구한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구체적으로 장르화 하기에는 쌈박한 명제다. 하필 죽는 날이 생일이라는, 그럴싸하지만 아무 의미없는 상징성도 덤으로 붙는다.


즉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느슨한 틀에 트랩과 도전 과제를 덧붙임으로써 일종의 게임처럼 구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 게임에는 룰이 존재해야 한다. 관객을 게임 구경꾼으로 끌어들였다면 공정한 게임의 룰을 소개해야 했다. 같은 하루의 반복이라는 포맷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룰은 '시간'과 '패턴'이다.


주인공 '트리'는 하루라는 쳇바퀴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 인물. 때문에 하루는 불변성이고 트리는 가변성이어야 한다. 트리가 직접 건드리지 않는 것들은 불변해야 이치에 맞다. 그러나 간호 어떤 장면들은 마치 [트루먼 쇼]처럼 트리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는 게 아닐텐데도 말이다.


잠에서 깨는 발단부터가 그러하다. 느긋하게 꿈지럭대며 타이레놀도 먹고 할 얘기 다 하고 나오든, 옷만 대충 추려입고 허겁지겁 뛰쳐 나오든, 기숙사에서 나와 마주하는 광경은 똑같다. 기껏해야 단 하루에 불과한 만큼의 세계관도 제대로 설정하고 운용하지 못할 만큼 각본이 두루뭉술이란 뜻이다.


트리의 선택지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루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죽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 지었다면 그것을 위한 최상의 루트를 설계함이 옳다. [사랑의 블랙홀]에서의 필 코너스도 "잠을 자지 않는다"는 선택은 물론 하지 않았으나, 특정한 목적지나 임무 없이 추상적으로 느슨하게 하루를 굴리던 필과는 달라야 한다. 어차피 펑추토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필과 달리, 트리는 살인마가 숨어있는 캠퍼스에서 벗어나 경찰서 유치장이라는 대안을 생각해 내기 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직접 옆에서 구경하는 게임과 달리, 게임을 닮았을 뿐인 영화는 훈수를 둘 수가 없다. 영리하지 못한 플레이는 어떤 관객에게는 그저 스트레스일 뿐이다.


선한 마음, 인간 관계의 개선. [사랑의 블랙홀]이었다면 여기서 끝이다. 그러나 한 번의 반전. 영화가 아예 맹탕이 아니라면 반전 하나 쯤은 있을 거라는 예상이 가능한 것과는 별개로, 그 반전에서 진범을 도출해내는 과정도 미심쩍다. 관객에게 공개하지 않고 생략한 별도의 이야기가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 얼렁뚱땅. 사실은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으면서 관객 재밌으라고 그 동안 시치미를 떼고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


그나마의 가치가 있는 "사랑의 블랙홀 슬래셔 버전" 쯤이 됐으려면 차라리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도 차용해 죽는 방식을 다양하게 구성하던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살인범이 한 명이 아니라는 정도로는 가 주는 게 좋았을 것이다. 기왕 룰을 깰거면 확실하게 깨든가, 적당히 편리하게만 교묘히 룰을 비틀고 결과물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크다.


무성의한 각본, 그러나 "반복되는 죽음"이라는 거시적인 플롯은 기대를 걸만한 프레임이다.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후속작에는 발전이 있길 바란다.





연출 크리스토퍼 랜던
각본 스콧 로브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