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Elle (2016) by 멧가비


미쉘은 강간 피해자다. 강간의 마지막 순간으로 영화가 시작하니 이것은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미쉘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가 관찰하는 그녀의 삶, 생부는 유명한 살인자고 남편과의 이혼은 폭력 때문이며 하나 있는 아들조차 수틀리면 주먹을 들어 올리는 망나니. 불륜 상대가 뻔뻔하게 요구하는 게 하필 구강성교인 것은 상징적이다.


폭력적인 남성성에 둘러쌓인 삶에서 그녀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방법이란, 누군가의 힘을 빌릴 바에는 자신 스스로가 폭력성의 일부로 섞여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이자 동정이다. 팩트는, 그녀에게는 가련한 피해자로 남을 의사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녀 역시 너저분한 욕망의 아수라(阿修羅) 중 하나라는 것.


미쉘의 삶 역시 온갖 패륜으로 어지러져 있으며, 강간 피해라는 것은 그녀를 "불쾌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인다. 단지 미쉘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눈치라고는 전혀 보지 않는 욕망의 뇌를 가진 인간들. 미쉘은 그런 세계에 산다. 오히려 정체를 들킨 강간범은 미쉘이 가진 욕망의 또 하나의 장난감 쯤으로 도구화 된다. 사실 이미 그 강간범은 미쉘에게 강간범이기 이전에 관음의 대상이었다.


미쉘의 엄마는 미쉘을 두고, "널 불쾌하게 구는 상대에게 잔인해진다"고 평한다. 망나니 아들이 자신보다 더 잘 따르는 친구 안나에게는, 그녀가 가장 기분 좋을 순간에 그녀 남편과의 불륜을 고백한다. 전 남편은 새 애인과 헤어지고 꼴보기 싫은 부모는 모두 사라진다. 신경에 거슬리는 모든 일들이 적당히 치워지고 나서야 미쉘은 강간을 되돌아보고, 강간범과의 기행과도 같은 관계를 멈춘 뒤 그를 응징하기로 한다. 그 결과, 강간범은 죽고 망나니 아들은 살인의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미쉘은 그렇게 복수 아닌 복수를 끝내고, 삶을 적당히 청소한 후에야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미쉘의 모든 배덕(背德)의 행보. 영화는 그녀를 묘사함에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흔한 동정심을 가질 여지를 제거하고 오히려 "당해도 싸다"는 기분이 들기 직전까지 몰아감으로써 일종의 심리 트릭을 건다. 이 딜레마에 어떠한 대답을 내놓는지에 따라서 관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불쾌한 성품의 인물, 편들어 주고 싶지 않은 부도덕한 인물이라고 해도 끔찍한 성범죄의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다. 슬픔에 빠지거나 두려움에 떠는 대신 여전히 비행(非行)을 이어가는 끔찍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강간 피해자에게 모두가 동정할 수 있는 전형적인 "피해자 드레스"를 입히지 않는 점이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피해자에게 일정한 태도와 반응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자들에게는 혼란스럽겠지만 말이다.






연출 폴 버호벤
각본 데이빗 버크
원작 필립 장 (Oh...,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