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후 2017 크리스마스 스페셜 Twice Upon a Time by 멧가비


12대 닥터의 마지막 모험은 외계인 침공을 막아내거나 누군가를 구출하지 않는, 닥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이야기. 두 닥터가 운명을 거스르려 한다. 게스트 출연한 1대 닥터는 더 살고싶어 재생성을 거부하고, 주인공인 12대는 긴 삶을 끝내고 싶어 재생성을 거부한다. 각자의 아픔과 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첫 재생성을 두려워하는 1대는 자신의 수십억 년 미래의 모습인 12대를 보며 자신이 우주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희망을 얻는다. 12대는 삶을 끝내려는 결정을 손에 쥔 채로, 삶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과거 모습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 의의를 새로이 되새긴다. 그 시작부터 분노에 차 있었던 삶에 마침표를 찍으며, "좋은 달렉" 러스티를 다시 만나 이루는 수미쌍관. 12대의 오랜 고통은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 안식을 맞이한다.


가장 중요한 테마는 "기억". 망자의 기억을 추출해 아바타의 형태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 시즌 10에서 사이버맨이 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빌이 아바타가 되어 돌아온다. 빌은 스스로 아바타임을 인정하면서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억"임을 강조하지만, 애틋한 마지막 인사와는 별개로 닥터는 그것이 진짜 빌이라고는 끝내 인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에 따르면, 정작 닥터야말로 물리적으로는 이미 예전의 그 닥터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다. 10여 회의 재생성만으로도 자아는 커녕 이미 신체의 일관성 조차 없고 오로지 기억만으로 이뤄진 존재. 바로 지난 시즌에서는 고백 다이얼에 갇혀 45억 년 동안 셀 수 없이 반복적으로 소멸-카피 되질 않았나.


클라라의 재등장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지만 플롯과 소재가 좋은 판을 깔아, 뻔한 귀환임에도 감동을 준다. 닥터는 역대 뉴 시즌 닥터 중 처음으로 누군가의 기억을 완벽히 잃은 닥터. 기억에서 사라진 클라라가 닥터의 마지막 순간에 기억의 단말마로서 찾아온다는 건 클라라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하기엔 너무 슬프고 시적으로 아름답다.


스티븐 모팻, 피터 카팔디 그리고 제나 콜먼과의 완전한 이별. 조디 휘태커의 첫 등장은 너무 튀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전형적인 새 닥터 등장 이벤트 그대로여서 무난했다.


멀티 닥터 에피소드는 늘 닥터가 기억하지 못하는 패러독스를 낳는다. 되찾은 클라라의 기억은 새 닥터에게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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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니킬 2018/01/08 22:45 #

    이 에피소드를 봤을 때는 닥터의 마지막과 13대의 첫등장에 만족해서 넘어갔었는데, 며칠 지나고 났더니 여기 등장한 빌과 시즌10 마지막에 헤더와 함께 떠난 빌과는 다른 존재라는게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둘 다 사이버맨으로서 죽은 빌에게서 기억 = 인격을 옮긴 존재이니 동격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쪽 빌은 헤더를 만났다는 부분까지만의 기억을 가지고있어서 이 서비스의 방식으로 보면 결국 헤더와 떠난 빌이 진짜 빌(or 빌의 인격)이라는 것 같은게 묘하게 찝찝한 느낌이 드는지라, 닥터가 빌과 만나서 반가워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조금 이해가 되더군요.
  • 멧가비 2018/01/09 00:55 #

    정작 만든 인간들은 거기 까지 생각 못했다에 제 비트코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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