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라이더 쿠우가 仮面ライダークウガ (2000) by 멧가비


쇼와 시대의 가면라이더들은 '가면 쓰고 바이크 타는 고독한 영웅' 쯤으로 심플했으며 나머지는 땀냄새 나는 액션과 시부이(シブい)한 멋으로 채워졌다. 헤이세이의 첫 라이더에게는 그보다는 조금 무거운, "라이더로 변신"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고찰이 주어진다. 친구와 가족의 걱정을 등에 짊어지고 목숨을 거는, 용감하지만 무모한 행위라는 해석이 더해진다. 또한 동시에 주인공 고다이 유스케 자신에게 있어서는, 인간으로부터 조금씩 이탈하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가 겹쳐지기도 한다.


드라마를 더욱 새롭게 보강하는 것은 매스컴이나 공권력이 라이더의 싸움에 주목하는 방식. 쇼와의 특촬이 저기 어딘가 벌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해치우는 싸움에 가까웠다면, 헤이세이의 매스컴은 라이더와 괴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달하는 등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싸움을 한다. 또한 경찰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동원되고 서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라이더 단일 작품 역시 흔치 않다.


가면라이더로서는 드물게 주인공의 친 가족이 레귤러 캐릭터로 출연하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을 포함해 일상 생활의 묘사 역시 섬세하다. 완성된 인격의 유스케와 사람들의 따뜻하고 착한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그만큼 일상을 위협하는 괴인(그론기)들의 반사회 행동이 더욱 끔찍하게 부각된다. 흔히 형사물에서 주인공의 가족을 비춰줄 때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불안한 것과 마찬가지. 조연들의 드라마가 플롯에 개입함에도 이야기가 산만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전체의 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그들이 곧 유스케가 지키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새 라이더는 완성도 높은 특촬 히어로 드라마이자 괜찮은 형사물이기도 하다.


리얼리즘에 대한 변태적 장인정신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타카데라 시게노리'의 특징이 집약적으로 잘 드러나기도 한다. 특촬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리얼리스틱한 "시공간의 개념"이 도입되는데, 사건이 일어나면 그곳이 어디든 단 몇 초 만에 영웅이 짠 하고 등장하는 연극적인 전개를 최대한 배제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에는 구체적인 장소와 발생 시각이 주어지고, 라이더가 현장에 늦으면 희생자는 늘어난다. 괴인이 주인공 주변에서만 나타나는 간편한 플롯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현실의 치안 시스템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서사의 중추적인 역할로 배치한 것 또한 타카데라식 리얼리즘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찰의 수사, 무전을 통한 정보 공유 등이 라이더에게 큰 전력으로 보태진다. 바이크와 권총 등 필수적 장비 역시 경찰이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가면라이더라는 개념 자체에 미스터리함을 부여하고, 고문서를 해독해 가며 봉인된 힘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강화폼을 소개하는 "필수 구성"에 설득력과 재미를 부여한다.


역시나 같은 맥락이지만, 경찰의 수사 과정 자체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마치 정통 수사극에 가면라이더가 슥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객전도 현상이다. 평범한 총으로 발사한 실탄에 괴인이 데미지를 입는다는 묘사같은 것도 다른 특촬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 그만큼 괴인들의 살인 행위도 노골적으로 묘사해 시청 학부모들의 반발을 야기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주인공 고다이 유스케를 경찰로 설정했다면 쉽고 캐주얼한 전개를 펼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스케를 어디까지나 방랑자로 한정하고, 대신 경찰 쪽에서 이치조 카오루라는 서브 주인공을 앞세움으로써 민간과 경찰력의 협력이라는, 쓰기 힘들지만 잘 쓰면 재미있는 플롯이 완성된다. 라이더로서의 자기 희생과 경찰의 공무를 분리함으로써, 경찰의 업무가 라이더의 초인적 무용담에 가려지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이는 '울트라 시리즈'가 방위대 설정을 버리기 전 까지 오랫동안 안았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고다이 유스케는 라이더일 때 보다 그저 한 인간일 때 더 믿음직스럽고 멋진, 완성형 인격의 무결한 인간상으로 표현된다. 아마도 변신 히어로라는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다던 오다기리 조에 대한 배려가 캐릭터 설정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유스케는 라이더로서의 싸움 외에도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유스케라는 한 인간으로써 고군분투하는, 역대 라이더 주인공들 중에서도 유독 바쁘고 무거운 짐을 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유스케를 고단하게 하는 대신, '쿠우가'라는 미지의 힘에 자아를 빼앗기지 않도록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많은 휴머니스트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오다기리 조의 마이너한 성향 답게, 대대로 마초적이었던 쇼와의 가면라이더들과는 선을 긋는 따뜻한 휴머니스트 타입 가면라이더의 시초 쯤 된다. 아니 특촬의 역사를 넘어 슈퍼히어로 장르의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주인공은 드물다. 타인을 즐겁게 하기 위해 2천 개의 스킬을 보유했다는, 좋은 의미로서의 광대 같은 남자. 그런 사람을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다기리 조는 불꽃 같거나 드라마틱한 배우라기 보다는, 어느 작품에서나 능글맞게 녹아드는 물 같은 솜씨의 배우. 그런 그의 데뷔작이면서 동시에 그렇게나 참여하기 싫었다는 작품인데도 누가 그랬냐는듯 귀신같이 고다이 유스케에 빙의한 연기에는, 과연 꾼이다, 하며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덧글

  • 잠본이 2017/12/30 23:49 #

    생각해보니 평성 울트라세븐이나 울트라맨 넥서스, 오브 등에서 보여준 '방위대 외부의 방랑자가 울트라맨'이라는 구도는 이미 여기서 완성된 거였다고 볼 수 있겠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원래가 고독한 한마리 늑대였던 롸이다보다는 방위대에 꽤 크게 기대고 있었던 울트라맨에서는 정착하기 꽤 힘든 시험이었던 듯.
  • 멧가비 2018/01/02 15:04 #

    방랑자 캐릭터는 이미 쇼와 라이더 시절부터의 전통이죠. 모티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서부극이나 요짐보 까지 나오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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