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라이더 류우키 仮面ライダー龍騎 (2002) by 멧가비


가면 쓴 도시 영웅들과 괴인들의 싸움이라는 이분법적 플롯에서 탈피, 과감히 "배틀물"의 포맷을 시도한 작품. 어쩌면 [가면라이더 쿠우가]에서 그론기들이 진행하던 살인 게임의 아이디어를 역으로 뒤집은 발상이기도 하다. 본 작품에서의 '가면라이더'라는 개념은 단순히 정의의 영웅이 아닌, 미러월드라는 검투장에 갇힌 투사들이다. 타이틀에 담보됐던 고정적 의미와 플롯을 파괴해, 장르 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한 것.


가면라이더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 싸운다는 발상은 쉽게는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의 [하이랜더] 시리즈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장르사를 거슬러 오르면 일본의 만화 [근육맨], [세인트 세이야] 등 까지 거론할 수 있겠다.


본작의 특징은 '가면라이더'라는 이름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점. 가면라이더라는 이름은 더 이상 그가 영웅임을 담보하는 타이틀이 아니다. 그저 검투사들의 규격일 뿐, 누군가는 영웅이지만 누군가는 악당이기도, 방관자이기도 하다. 힘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사용하는 자의 의지라는 테마가 강조된다.


플롯에 맞게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에서도 '욕망을 향한 인간 군상들'의 비극이 부각된다. 원체 이 시리즈가 그 근원부터 비극성을 일정 부분 안고 시작했지만, 본작은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그 비극성의 그래프가 바닥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극장판이며 스페셜 드라마며, 평행우주적 구성의 다른 이야기를 거듭 조명하면서 다른 형태의 비극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변태성 까지.


주인공 키도 신지는 가장 바보같은 가면라이더다. 근본이 선하고 순진해서 마치 이용당하고 고통받을 운명을 타고 난 것만 같다. 영웅극의 주인공임에도 싸우기를 주저하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은 일견 답답하지만 그는 결코 우유부단하지는 않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비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 만큼은 끝까지 꺾지 않는다. 최종화 이전에 이미 사망한 주인공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지만, 최종화는 그 자신의 활약보다, 그가 남긴 유산과도 같은 휴머니즘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지켜봐 주는 에피소드인 셈이다.


제 2의 주인공 아키야마 렌은 가장 많이 고뇌하는 인물. 머리로는 이기적이길 원하는데 가슴은 그가 휴머니즘을 버리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에게 신지는 다른 극의 자석과도 같다. 다르기 때문에 끌리며, 그가 가지 않으려는 길로 끌어들이는, 성가시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될 최고의 파트너.


변호사 키타오카 슈이치야 말로 본작의 중립성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다른 의미로 성장형 캐릭터다. 신지가 망설임을 딛고 굳건한 의지를 다지거나 렌이 방황을 끝내고 가면라이더로서 성장한다면, 슈이치는 이미 가면라이더로서는 완성형인 인물. 대신 인간으로서의 성장세를 보인다. 그에게 키도 신지라는 인물은 휴머니즘을 감염시키는 병원(病原)이다. '결혼 사기범 졸다' 에피소드를 거치며 점점 "3총사"의 한 축에 가깝게 포지셔닝하고 때로는 개그 캐릭터의 몫도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드라마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으로서 한 인물을 미워하고 동시에 좋아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사쿠라 타케시. 마치 파괴하고 미워하기 위한 사명을 띄고 내려온 악마와도 같다. 아니 그도 어쨌든 가면라이더니까 검은 천사라고 해도 되겠다. 작중 가장 도발적인 인물이자 거의 모든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그 자신은 늘 여유만만한 태풍의 눈이다. 저연령 특촬에 나와도 되나 싶을 만큼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범죄자인데, 그런가하면 은근히 자신만의 코드를 지키는 깔끔한 모습에서는 묘한 프로페셔널리즘이 느껴진다. 정반대로 선한 근성을 타고 났으나 일정한 주관 없이 흔들리기 바빴던 초반부의 신지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하겠다.


테즈카 미유키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정석적인 정의한. 즉, 전통적인 가면라이더의 정서를 일정부분 계승하는 캐릭터다. 출연 비중이 적고 배틀에서 일찌감치 퇴장하지만 거의 존재가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키카드에 해당하는 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


흔히 후쿠사쿠 긴지의 영화 [배틀로얄]과 비교되고는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캐릭터 구성 면에서 은근히 겹치는 점이 많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듯 하지만 비폭력의 신념을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키도 신지'는 배틀로얄의 '나나하라 슈야'와 동류다. 처음부터 거친 면모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자신도 아픔을 감춘 조력자라는 점은 본작의 '아키야마 렌'과 배틀로얄의 전학생 '카와다 쇼고'가 겹친다. 연쇄 살인범 '아사쿠라 타케시'와 배틀로얄 참가를 위해 전학한 '키리야마 카즈오'의 유사점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이더 배틀의 배후에 있는 '칸자키 시로'는 '키타노 타케시'의 포지션이라고 해야할까. 특히 극장판에서는 남은 가면라이더의 인원수를 카운트하는 자막 한 줄만으로도 좀 더 배틀로얄에 가까운 느낌에 다가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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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영화 탐구 - 가면라이더 류우키, 배틀 로얄 2018-01-12 14:4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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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7/12/30 23:57 #

    근본적으론 가면라이더뿐만 아니라 특촬 히어로 전반에 대한 해체 재구축을 시도한 터라 더 충격이었는데 아사쿠라역의 배우가 예전에 초광전사 샹제리온에서 정의의 히어로(게다가 개그캐릭터)였다는게 상징적이죠. 좋든 나쁘든 현재 평성라이더의 융성은 이 작품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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