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피 할로우 Sleepy Hollow (1999) by 멧가비


팀 버튼 영화들은 대개 작가주의보다는 예술 영화에 가까운, 안정적인 내러티브보다는 그만의 탐미주의를 즐기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나 극단적인 이미지 콜라주의 실험과도 같은 [화성침공]의 바로 다음 작품은, 놀랍게도 서사를 집중해서 따라갈 필요가 있는 장르였다. 버튼의 수사물이라니, 벌써 세기말의 냄새가 난다.


주인공 이카보드 크레인은 신앙을 잃고 이성과 인과만을 믿게 된 남자. 이렇게 사리분별 뚜렷한 남자가 버튼 영화에 나와도 되는 걸까 싶었는데, 아뿔싸, 배경이 18세기다. 종교와 미신이 세상의 헤게모니를 완벽히 차지하고 있던 시절, 무신론자는 비주류요 아웃사이더일 뿐인 것. 이카보드는 잘 봐줘야 뉴욕 출신 힙스터다. 멀쩡한 주인공이 미쳐있던 시대에서 미친놈 취급을 받는 영화인 거다. 버튼 영화는 그 자신이 각본을 쓰지 않아도 어쩌면 늘 그렇게도 한결같이 반골적인가.


버튼의 장편 영화 중 두 번째로 사후세계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틀주스]가 이승과 영계의 교차를 빌미로 세입자와 건물주간의 알력을 다룬 일종의 우화였다면 이 영화의 오컬티즘은 본격 로맨스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A는 B의 주변을 맴돌며 존재를 어필하고, B는 자신의 세계관을 모두 박살내며 A의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렇다, 이건 이카보드와 호스맨의 로맨스다. 크리스티나 리치는 눈치없이 남의 로맨스에 끼어든 셈.


그 시절 성공한 예술가 감독 중에 가장 대중적이었으면서도 늘 한결같이 염세적이었던 미친 예술가의 세기말 영화. 세기말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전의 세기말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겹겹이 상징적이기도 하다. 원작과는 별개로 나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위커맨]의 자장 아래에 있다고 확신한다.





연출 팀 버튼
각본 앤드루 케빈 워커
원작 워싱턴 어빙 (단편 소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 1820)




비정기 한 마디

"다시 보고싶다 오렌지캬라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