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Planet of The Apes (2001) by 멧가비


이 영화가 차지한 시리즈 내의 위치에 관해서 당장 비교할 수 있는 영화가 하나 있으니 바로 존 길러민의 1976년작 [킹콩]이다. 오리지널의 충격적인 서스펜스나 날카로운 풍자가 없고, 2천년대 이후의 최신 테크놀러지와 정교한 드라마도 없는 과도기에 홀로 외로이 존재했던 리메이크. 그래서 그 어중간함 덕분에 나머지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양쪽 다 영화사에서 오래도록 써먹어진 레퍼런스들이다.


68년의 오리지널이 제시한 미래의 인간이 완전히 도태되어 야생 짐승과 다름 없었다면 이쪽은 인간들이 아직 인간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퇴화되어 어쩔 수 없이 "만물의 영장" 자리를 유인원들에게 빼앗기는 대신, 그저 더 우월한 종에게 경쟁에서 밀렸을 뿐이라는 건 '종의 진화'에 대해서 조금 더 고찰했다는 뜻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그저 계급만 역전된 상태, 오리지널의 절망감은 사라진 대신 그래서 오히려 긴장감은 팽팽하다. 비교하자면 레플리컨트 넥서스6 패거리처럼 조금 더 응원할 여지가 있다. 탈출보다는 투쟁을 향해 달려가는 리메이크, 좋은 방향 전환이다.


완벽히 현실을 무대로 삼아 제대로 된 SF로 진화한 2천 10년대의 리부트 3부작과 달리, 이쪽은 양식미로 가득한 스페이스 오페라에 근접해, 당장에 [스타트렉]의 에피소드로로 데려다 놔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시리즈 중 미술의 수준은 단연 최고. 차가운 CG로 덮여있지 않으면서도 진짜 침팬지나 고릴라들에게 말을 가르쳐 연기 시킨 듯한 리얼함. 90년대 말 헐리웃의 수트 액팅 기술은 오히려 훗날 본격적으로 시장을 점령하는 CG 기술보다 앞서는 면이 있었다. CG가 아직도 가지 못한 영역을 탈바가지는 진작에 도달했다.


시리즈 중 가장 혹평을 받았으며 지금에 와서는 오리지널의 위엄은 고사하고 리부트 3부작에도 밀려 언급 조차 뜸해진 비운의 작품. 그들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는 하지 않겠으나 가장 내 취향이다. 그래픽 침팬지의 징그러울정도로 섬세한 표정 연기를 보면서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느니, 잘 만든 탈바가지 유인원들의 인상파 연기를 보는 게 미학적으로 훨씬 흥미롭다.






연출 팀 버튼
각본 윌리엄 브로일스 주니어, 로렌스 코너, 마크 로젠덜
원작 피에르 불 (소설 La Planète des singes,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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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의 오리지널 영화가 나올 당시에는 유인원 생태에 대한 연구가 현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어서, 실제로는 호전적인 침팬지와 상대적으로 온화한 고릴라의 습성을 정반대로 묘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본작에 와서는 그것을 바로 잡기도 했는데, 사실은 침팬지와 고릴라의 습성을 제대로 구분지어 묘사한 작품이 먼저 있었다.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1974년 특촬 드라마 [원숭이 군단](猿の軍団)인데, 이는 [혹성 탈출]의 인기에 편승해 제작된 아류작으로도 유명하다. 아류작이 원판의 오류를 바로 잡는 업적을 달성하다니 이런 주객전도가 있나.




덧글

  • 포스21 2018/01/19 10:08 #

    아... 재밌을 거 같은데 못본 영화네요
  • 잠본이 2018/01/28 15:25 #

    원숭이 군단은 정말 엉뚱한 분야에서 생각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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