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피쉬 Big Fish (2003) by 멧가비


말년의 아버지에게서 과거사를 듣고 그에 관한 애증을 털어놓는 액자 구성의 이야기. 한국에서는 90년대 말 권장 도서로 유명했던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이야기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자(아들)의 아내가 프랑스인이라는 점마저 같은 것은 우연일까. 물론, 끔찍하게 사실적인 홀로코스트의 기억 대신 속아도 행복한 허풍이 이야기의 골자라는 것에서 전혀 달라지지만.


상기했다시피 액자 구성도 있지만, 로드무비 플롯을 취한다는 점에서 역시 기존 팀 버튼 영화들과 크게 다르다.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갇혀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본작에서는 주인공이 "더 큰 세상"을 외친다. 게다가 현재 파트는 완전히 다른 작품과 릴이 섞인 듯 장르 자체가 다르고, 버튼 특유의 미학이 담긴 회상 파트에도 작중 인물들이 부동산 금융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 역시 버튼이 이전까지 다뤘던 어떤 주인공들과도 다르다. 늘 불안해 하거나 세상이 싫어 숨어들었던 버튼 주인공들과 달리, 블룸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삶을 즐기며 세상 밖을 사랑한다. 그가 회상으로 묘사하는 그 자신은 초인도 이런 초인이 또 없다. 그렇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처음이자 마지막 슈퍼히어로 영화인 셈이다. 배트맨 시리즈? 그걸 누가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하나.


이토록 수 많은 "버튼스럽지 않음"이 발견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효과로, 그래서 여전히 버튼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동화같은 과장이 가득하고 사랑이 있다. 감추려다가 들키던 전작들과 달리,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게 사랑을 어필하는 등 태도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마치 처음부터 시각화를 위해 존재하는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텍스트들이 있는데, 대니얼 월리스의 원작이 그러하다. 월리스의 허풍 서사는 버튼의 시각 예술 감각을 만나 날개를 단다. 영화의 회상 파트는 장르를 막론하고 빛을 발하는 버튼의 "미학적 샌드박스"다.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비선형적 허풍이 어찌저찌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거짓말쟁이 물고기 아저씨의 연대기도 끝이 난다. 그가 왜 그리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방랑자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란 게 대개는 그러하다. 접하는 일,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방랑의 이유이자 방랑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니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결코 머리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겠지. '뮌하우젠 남작'이 아들을 낳았다면 이 영화 속 부자처럼 됐을지도.





연출 팀 버튼
각본 존 어거스트
원작 대니얼 월리스 (동명 소설,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