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보이 Hellboy (2004) by 멧가비


악마의 형상을 한 슈퍼히어로의 활극이라 하기엔 내게는 너무 슬픈 이야기다. 주인공 헬보이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이방인. 제국주의 괴물들의 초과학에 의해 낯선 땅으로 끌려 온 꼬마 악마는, 자신의 정체성에 진지하게 고민할 틈도 없이 가족애에 이끌리고 휴머니즘에 덜미 잡혀, 오히려 자신과 근본이 같은 괴물들과 싸우는 일종의 노예 검투사로 자라난다.


그가 부모라, 가족이라 믿는 이들은 그가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강요한다. 생각해보자, 그의 뿔을 최초로 자른 것이 과연 그 스스로였을지. 헬보이가 거친 언행 사이에 보이는 휴머니즘은 오히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마가 어째서 휴머니즘에 입각해야 하나.


라스프틴과 나찌 잔당은 인간의 적이지 악마의 적이 아니다. 최후에 헬보이는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음에도 스스로 다시 뿔을 꺾고 우주 공간의 악마를 물리친다. 인간들의 악당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 싸우는 악마라니.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마저 포기한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비극이다. 인간들이 그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것은, 결과적으로 악마의 목에 개목걸이를 단 셈이다. 늑대를 조련해 개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흔히 2편에 비해 평가를 박하게 받는 경우가 많으나 내 관점에서는 이쪽이 걸작. 델 토로 감독 특유의 미학이 집대성된 영화인데, 찌질한 신비주의 과학자였던 코믹스 속 라스프틴과 크뢰넨을 각각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태엽 장치의 괴인으로 재해석한 그로데스크한 감각이 특히 좋다. 에이브는 원작과의 괴리감이 가장 큰 캐릭터인데, 헬보이와 비슷하게 하드보일드하고 진지한 에이브를 레드와 블루라는 코드명처럼 완벽히 대비되는 성격으로 탈바꿈 시킨 것은 절묘하다. 이에는 더그 존스의 정평이 난 기묘한 몸짓 연기가 힘을 싣는다.






연출 기예르모 델 토로
각본 기예르모 델 토로
원작 마이크 미뇰라 (만화 Hellboy: Seed of Destructi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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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다른 영화에 더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바람같은 것도 가지게 된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역시나 '판의 미로'의 판과 손바닥 괴물. 그리고 [헬보이] 시리즈의 에이브. (사실은 1인 3역) 시바 까놓고, 헐리웃에서 이 형 손바닥 보험 같은 거 하나 들어줘야 되는 거 아니냐. ... more

  • 멧가비 : 헬보이 Hellboy (2019) 2019-04-11 18:35:36 #

    ... 기예르모 델 토로의 앞선 두 편 [헬보이]와 [헬보이 골든 아미]는 의외로 소품이었다. 원작자 마이크 미뇰라와 델 토로의 취향적 교집합이 기괴한 탐미주의로 승화하는 컬트 마스터피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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