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 (2017) by 멧가비


사랑이라는 것은 물로 시작해서 물로 끝난다. 적어도 육체적 사랑은 그러하다. 불꽃같다 직유되는 사랑도 반드시 물기를 머금는다. 물이라는 관념은 에로스적 사랑을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다.


[마그마처럼]의 주인공 아츠코가 각인된 첫 오르가즘의 감각에 사로잡혀 온탕 안에서의 섹스를 원했듯, 이 영화의 주인공 일라이자가 물에 탐닉하는 것은 물가에 버려진 고아였던 과거와 상징적으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욕조의 따뜻한 물에서 자위하던 그녀는, 끓는 물에 삶은 달걀로 양서인(兩棲人)을 유혹한다. 그리고 그 양서인과의 사랑을 끝내기로 계획한 날은 온 세상이 물로 뒤덮이는 날이다.


제목은 "사랑의 형태"가 아닌, "물의 형태"를 논하고 있다. 사랑과 물, 정서와 물질이라는 두 개념을 무정형(無定形)의 공통점 아래 동일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양서인과 일라이자 두 사람은, 물이라는 공통 분모 아래에 서로를 동류로 인식하며 물로 가득한 욕실에서의 섹스를 통해 하나가 된다. 저 둘에게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출생 배경, 살아가는 양분이다.


영화는 또한 이종(異種)의 사랑과 특정한 시대 배경을 통해 인간과 괴물 간 경계를 지우고 오히려 가치를 전복하고 있다. 일라이자의 룸메이트 자일스는 중년의 게이, 저 폭력적인 시대에서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 유형의 사람이다. 친구인 젤다는 과체중의 흑인 여성,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카테고리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소련인과 말을 하지 못 하는 일라이자 까지, 세상의 기준에서 조금씩 빗겨난 아웃사이더들이 양서류 인간의 보호를 매개체로 휴머니즘을 제시하는 동안, 스스로 신의 형상에 근접하다고 믿는, 일종의 표준인 장신의 백인 남성 스트릭랜드는 직장 내 성희롱은 물론 인종주의에 자학적 변태성 까지 드러내며 악으로 군림한다.


바로 그 스트릭랜드라는 캐릭터가 또 아주 물건이다. 그림처럼 완벽하게 셋팅 된 가정에는 시큰둥한, 파괴만을 욕망하는 자. 다짜고짜 양서인을 해부하려 들고 깨끗한 화장실 바닥에 오줌을 줄줄 흘려댄다. 봉합한 손가락을 썩게 놔두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검게 변한 그것을 제 스스로 뜯어내는 가학적인 파행. 잘근잘근 사탕을 깨물어 씹는 사소한 행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가 일라이자에게 욕정을 품은 것도 어쩌면 일라이자의 신체적 결함 때문일 것이요, 새로 뽑은 캐딜락이 반파됐을 때의 표정을 미묘한 흥분으로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파괴의 화신인 스트릭랜드가 어떻게든 파괴할 수 없는 '물'의 이미지를 가진 일라이자와 양서인의 사랑에 패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관객은 연인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것 만큼이나 저 흉악한 악당이 처절히 무너지길 희망한다. 물리적으로는 너무 관대한 최후였으나, 그가 상상하던 '신'의 모습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정서적으로는 충분한 응징이었을 것이리라.


델 토로는 그의 필모 대부분에서 그러했듯, 또 다시 자신의 미학 취향을 전시한다. 각각 유니버설 호러와 고딕 멜로에서 튀어 나온 주인공 두 연인은 무성 영화의 로맨스 커플처럼 말을 나누지 않으며,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는 순간은 초기 유성 영화의 주요 관심사였던 '뮤지컬'로 연출된다. 사랑의 찰나에 영화 역사의 격변기 한 조각을 담았음은 물론이요, 그들의 사랑에 넘쳐 흐른 물들이 모이는 곳은 고전 영화 상영관이다. 영화의 이미지가 사랑을 넘어 생명의 근원인 물로 향하는 것 처럼, 영화가 반영한 취향 역시 장르가 태어난 곳으로의 귀소본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알려졌다 시피 [헬보이 골든 아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도 하다. 원작의 '에이브 사피엔' 캐릭터를 거의 새로 창조하다시피 뜯어 고쳐가면서 이루려 했던 양서인과 인간의 로맨스. 제대로 끝맺지 못한 시리즈물에 대한 불만족이 오히려 이후에 이런 영화를 낳았으니, 결국 헬보이 시리즈의 상업적 미진함이 낳은 전화위복의 영화인 셈이다.


단 한 가지, 양서인과 일라이자의 사랑이 미완성이었더라면, 적어도 내겐 더 완벽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연인을 따라 바다로 도망쳤는데 인간인 줄 알았던 그 자신도 사실은 해저 태생일지 모른다는 암시. 이거 너무 [스플래시] 엔딩이다. 단지 톰 행크스에서 샐리 호킨스로 바꼈을 뿐이잖아. 어쩌면 델 토로에게는 더그 존스의 저 미끌거리는 양서인이, 대릴 해나의 인어처럼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르지.






연출 기예르모 델 토로
각본 기예르모 델 토로, 바네사 테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