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Moon (2009) by 멧가비


내가 나 자신과 공조해서 또 다른 나를 음모에 가담시키려 하고, 나를 위해 나를 도우려 하지만 결국 그 내가 역으로 나를 위해 희생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중언부언 같은 이야기를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은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이다. 근본이 같은 자아를 지닌 복제인간 끼리의 작은 이야기. 얼핏 상상력만으로는 마이클 키튼 주연의 [멀티플리시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멀티플리시티]가 한 명의 자아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외면끼리의 갈등과 조화에 관한 코미디였다면, 본작은 여기에 '시간'과 '경험'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샘1과 샘2가 처음 조우한 이후,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후의 행동을 결정하는 대목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부분. 샘2가 거의 "태어나자 마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면, 샘1에게는 자신이 진짜 샘이라고 믿고 지낸 3년의 시간이 있다. 이것이 그들의 캐릭터를 분리하고 2인극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결정하게 만든다.


샘1과 샘2의 행동 양상 차이를 관찰하면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심어진 기억에 의한 자아 통제력이 실제 경험에 의해 학습된 상황 대처 방식보다 우위에 서지 않는다는 것. 즉, 영화는 후천성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이데아'라고 말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다분히 한 인간의 자기연민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샘2가 샘1을 지구로 보낼 계획을 세운 것은, 눈 앞에서 죽어가는 타인을 동정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선행임과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다. 반대로 샘1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대신해 샘2의 지구 귀환을 바란 것은 그것이 곧 간접적인 자아실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최초 계획과 달리 샘3은 희생되지 않았고 샘1은 주어진 수명을 다했으며 샘2는 길지 않은 목숨에 희망을 걸고 지구행을 택한다. 세 명의 샘이 서로 누구도 해치지 않고 모두가 안전한 결말을 맞은 것은 '자기 방어 기제'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했음에 다름 아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HAL'을 뒤집은 '거티'도 그렇지만, 데이빗이 각기 젊고 늙은 얼굴로 자기 자신과 조우한 순간 사이키델릭의 세계로 접어들며 추상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과 달리 본작의 샘은 자기 자신과의 협력을 통해 순수하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만 행동했다는 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조금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으로 변주한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연출 던컨 존스
각본 네이든 파커



비정기 한 마디

"다시 보고싶다 오렌지캬라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