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2018) by 멧가비


일찌기 우주 최강최악의 부동산 재벌이자 용역 철거 업자인 프리더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곱 여의주의 수색에 나섰고 굴복하지 않는 무리들을 죽음으로 벌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정의의 무리들은 그 깡패 대장한테 빼앗길 바엔 차라리 보물을 파괴하기로 한다.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안 돼 그거.


어벤저스 세 번 째 영화를 보며 [드래곤볼] 나메크성 챕터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가하면 가디언즈 멤버들을 만난 스타크의 표정에서는 [네코마인]에서의 베지터가 연상되기도 한다. '아 씨발 장르를 잘 못 만났다' 하는 당혹감. 마블 코믹스에 닥터 슬럼프 같은 게 들어온 건가 하는 이물감.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중 타이틀과 내용물이 달라붙지 않는 두 번째 경우다. 한 번은 [시빌 워]가 그러했다. 캡틴 아메리카의 타이틀이 아닌, 그 쪽이야말로 어벤저스의 세 번째 영화가 되었어야 했다. 이 영화는 반대로 '타노스'의 이름을 건 영화여도 충분하다. 그저 관습적인 표현으로서의 "주인공을 압도하는 악당의 존재감" 따위가 아니다. 정말로 내러티브는 타노스가 주도하며, 타이틀롤인 어벤저스 멤버들이나 간판 조차 내걸지 못한 가디언즈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그저 리액션할 뿐.


타노스는 어떠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캐릭터다. 그냥 심플하게 한 가지만 끝장나게 잘 하면 된다는 진리. 과학이고 마법이고 나발이고, 그 무소불위 압도적인 근력 앞에서는 모기가 앵앵대는 잔재주일 뿐이다. 근데 이 영화가 그렇다. 여태 나온 MCU 영화 중 "정서"가 가장 부족한 영화 중 하나다. 소위 말하는 '단짠단짠'. 그저 웃기고 찢고, 웃기고 부수고, 웃기고 죽이는 것의 연속. 하지만 그 단순무식한 반복 구조를 극한으로 밀어부치면 이게 또 먹히는 거다. 그 압도감에 방광 마저 숨죽인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관객의 저항감을 굴복시키는 힘이다. 타노스는 사실 개인적으로 썩 응원하게 되지 않는 캐릭터 유형인데,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어버리지만 사실은 공명심에 취한 과대망상 환자인 인물이다.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에서 슈퍼히어로 망상에 빠진 주인공 프랭크는 영화관 앞에서 새치기한 시민을 둔기로 후려쳐 머리를 깨버린다. 스케일이 다를 뿐, 타노스는 내게 딱 그 정도의 미친 자경단이다. 뜻은 알겠고 속 시원한 면도 있다만, 그래도 방법이 그건 좀 아닌 거지. 하지만 타노스에 대해 느끼는 한심함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에는 납득을 한다. 미친 제노사이더가 자신의 계획을 완성한 후 상실감에 망연히 주저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결말이라니. 여기에는 시적인 아름다움마저 존재한다. 단, 감독이나 각본가들이 설마 저 보라색 부랄턱의 웃기지도 않는 망상을 진지하게 여긴 건 아니었길 바란다.


앞서 이 영화엔 '정서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적인 정서를 대신하는 '몰락의 미학'이 영화에 있다. 착실하게 쌓여 온 마블 영웅들의 서사와 성장이 압도적인 힘과 광기 앞에서 도미노처럼 줄줄이 자빠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느끼는 안타까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느껴지는 조형미. [시스의 복수] 제다이 몰락 시퀀스를 150분 동안 천천히 그리고 좀 더 화려하게 보는 기분이다. 분한 마음보다 미학적 쾌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앞서 말했듯, 영화가 철저히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마찬가지로) 타노스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객은 어쨌든 심정적으로 주인공의 편을 들게 되어 있으니까.



모순은, 유압식 기계처럼 양보 없이 거세게 밀어부치는 액션의 박력을 칭찬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들과는 다른, 아주 사소하고 섬세한 부분들이라는 점이다.


첫째는 로스 국무장관 씬. 당장 지구를 넘어 우주 전체가 좆되게 생겼다는데도 작은 성과에만 집착, 캡틴 아메리카를 체포하라는 지시 밖에 내리지 못하는 탁상공론 관료주의 캐릭터에 관객인 나는 그만 현실적인 염증을 느끼고 만다. 우주의 스케일을 다루며, 시리즈 중 가장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영화에서 아주 작은 부분은 현실의 지긋지긋한 점을 날것으로 풍자하고 있다. 어벤저스 같은 영웅들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무능한 위정자들은 차라리 자빠져 자던가 어디 짱박혀서 넷플릭스 드라마나 쳐 보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거지만,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이 사람들 목소리가 제일 크다.


둘째는, 이게 참 재미있는 게, 가만 생각해보면 '어벤저스'의 타이틀을 건 영화임에도 두 수장인 캡틴과 스타크는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마주치질 않는다. 스타크는 캡틴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우주가 당장 깻가루가 되더라도 감정이 틀어진 친구에게 전화하지 못 하겠는 그 기분. 여기서 또 한 번 웃기고 슬프도록 현실적이다. 지구의 멸망 위기 앞에서도 인간적인 작은 마음 한 구석을 버리지 않는 스타크의 짠한 휴머니즘. 그래서 아쉽다. 캡틴 쪽에서도 스타크를 떠올리는 작은 장면 하나 쯤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칭찬 뿐이지만 한 끗이 아쉽다. [시빌 워]의 후일담과 타노스 서사를 동시에 다루려다 보니(물론 그래서 영화의 템포가 빠르기도 하지만) 조금은 급해 체할 것 같다. 가령 '어벤저스 vs.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라든가 하는, 징검다리 영화가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자고 있는데 누가 깨워서 내 입에 단 것, 짠 것을 계속 밀어넣는 것 같다. 어쨌든 혀는 그 맛을 느낄테고 배는 부르겠지만, 꼭 무슨 할당량 채우기 같아서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연출 앤서니 루소, 조 루소
각본 크리스토퍼 마커스, 스티븐 맥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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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OSH 2018/04/28 12:01 #

    타노스는 원펀맨...
  • NRPU 2018/04/28 14:31 #

    '시간이 되었다 타노스 오더66을 실행하라'
  • 잠본이 2018/05/06 15:34 #

    그리고 영문도 모른채 당하는 애꾸눈 윈두(어라)
  • Dannykim 2018/04/30 05:48 #

    징검다리 영화가 있었으면 한다는 의견에 매우 동감합니다. 블랙팬서가 작은 부분에서나마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을것 같았는데, 인피니티워를 목전에 두고 개봉한 영화치고는 너무 국지적이었단 느낌이 들었거든요.
  • 멧가비 2018/04/30 10:28 #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블랙팬서가 좀 아쉽네요. 세계관 떡밥 없이 독립적인 영화였다는 점은 고무적인데, 그래놓고선 정작 트찰라에 대해서 보여준 건 많지 않죠.
  • 잠본이 2018/05/06 15:35 #

    이 영화가 타노스 영화이듯 블랙팬서는 킬몽거와 와칸다에 대한 영화였던지라ㅠㅠ
  • 잠본이 2018/05/06 15:37 #

    >캡틴 쪽에서도 스타크를 떠올리는 작은 장면 하나 쯤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지구의 중요한 수호자 한 명을 잃었다'라는 식으로 공적인 멘트를 하긴 하는데 너무 쿨시크하긴 했죠. 위대한 오역가께서 이 부분을 그냥 '친구를 잃었다'라고 옮긴 건 설마 그런 불만을 배려해서인가(믿는 사람 율리시스 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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