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2 Deadpool 2 (2018) by 멧가비


사실 1편 때도 그랬지만, 내가 선호하지 않는 유형의 코미디다. 가진 재료로 어떻게든 승부보는 대신, 외부의 소재들을 계속 끌어와 이죽거리는 류 말이다. 메타 조크도 한 두 번이지,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남의 영화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부터 마음이 식는다. 이거 그냥 [빅뱅 이론]에 슈퍼히어로 하나 들어와 있는 거잖아.


하지만, 싫어하는 타입이라고는 하나 유독 이 시리즈는 흔쾌히 받아들여진다.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한 메타 유머에 자극적인 연출, 뜬금없는데 왠지 어울리는 음악 등. 1편에서 이미 재미 봤던 뻔한 수법들 또 갖다 썼을 뿐이지만, 농담이라는 게 그렇다. 달변가들은 한 말 또 하고 또 해도 그게 들을 때 마다 재미난 경우가 있거든. 데드풀이라는 캐릭터에 피로하기엔 이 장르에서 아직은 독보적이기도 하고, 저 데드풀의 독설인듯 애매모호한 농담들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 본인의 진정성도 느껴지고 말이지. 이미 갈팡질팡 하며 시리즈로서의 전체 그림은 형편없어진 '엑스맨 시리즈'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시리즈에 나름대로 품위있는 일단락을 지어준 [로건]에 마저 (성역화는 커녕) 시작부터 시비거는 이 영화에, 어찌 웃음을 아낄 수 있으랴.


하지만 다음 영화도 똑같다면 그 땐 정말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번 영화가 확실한 건, 1편처럼 러닝타임 내내 웃게 되진 않더라. 질리기 전에 수법 바꿔야 한다. 유행어 하나 터지면 그것만 반복하다가 초라하게 막 내리는 공개 코미디 꽁트처럼 되진 않길 바란다. 그린 랜턴 조크가 영원히 먹히진 않을테니까.


그런데 애초에 1편부터 전적으로 데드풀의 트래시 토크와 메타 유머로 짭짤했던 영화라,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기도 애매할 것이고, 그냥 소진되다가 스러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시리즈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


아쉬운 점. 영화 도입부에 제시되는 데드풀의 개인적인 고뇌와 영화 전체의 플롯이 다소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이 있다. 따지자면야, 러셀에게 향한 총알을 데드풀이 대신 맞아준 게 애초에 바네사의 죽음에서 시작한 나비효과이기도 하니까 이론적으로는 기승전결이 맞는 이야기긴 한데, 뭔가 아무튼 헐겁게 맞아 돌아간다는 인상이 다소 있다. 뉴질랜드 꼬마와 케이블 출현 등, 국면전환이 너무 빨랐기 때문일까.


데드풀 왈, 이번 영화 컨셉은 '가족 영화'란다. 전작이 데드풀의 주장대로 정말 로맨스 영화를 데드풀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납득 갔다면, 이번에는 약간은 어거지 같다. 계속해서 가족 영화임을 주장할 거였으면, 저게 왜 가족이지? 싶은 생각으로 마무리 지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악당이 될 녀석을 설득해 가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구조. 악당이 없는 영화다 이건데, 그거 하나는신선하다. [스카이 하이]에서, 적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애인이 되고, 애인이 적이 됐던 묘한 순환 구조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의의는 '엑스맨 시리즈'에 대해서다. 그 시리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데드풀 영화 스스로 지나치게 의식했더라면 지금의 색깔은 없었을 터. "우리 같은 시리즈잖아"라며 가식적으로 어깨동무 하고선, 철저하게 이용하고 조롱만 하는 뺀질거림이 좋다. 엑스맨 시리즈는 이제 거의 통일신라 말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시리즈가 아직은 영향력이 있을 때 데드풀 쪽에서 조금 더 맞 갖다 쓰고 함부로 다뤘으면 좋겠다. 이미 3류 악당으로 등장한 바 있던 저거넛을 컴백 시킴은 물론, 재비어와의 형제 설정도 되찾는 걸 보면 이미 세계관과의 연결성은 전혀 신경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론적으로는 엑스맨 유니버스에 속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데드풀이라는 탕아의 독립된 시리즈라고 인식하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지막 느낀 점. 사실 영화 다 보고나서 어째 좀 밍숭맹숭 하더라고. 세계관을 뒤흔드는 큰 사건도 없고, 전작과 연결되는 떡밥 풀이라든가 후속작으로의 클리프행어 등등 없이, 너무나 캐주얼하게 마무리 되는 슈퍼히어로 영화라니. 문득 뒷통수를 맞은 느낌 들었다. 어느 샌가 내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다단계식 서사 운용 방식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 거다. 코스 요리만 먹다보니, 가성비 좋은 단품에 어색해하는 단계 까지 온 거지. 사실 그 단품들이 맛있어서 입문한 장르였는데 말이다.







연출 데이빗 레이치
각본 렛 리스, 폴 워닉, 라이언 레이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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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바네사는 정말 살아난 거 맞는지 좀 애매하다. 같이 나열된 내용들이란 게 "그렇게 라이언 레이놀즈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만우절 구라 같은 것들이라 바네사 부분 하나만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찜찜하네. 다음 편 보면 알겄지 뭐.



이번 영화에도 일단은 휴 잭맨 또 나왔다. 은퇴한 노병의 개근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덧글

  • 로그온티어 2018/05/18 23:58 #

    생각에, 또 나올 겁니다. 원작에서 울버린 좆까라고 외치고 다니는 게 풀 씨잖아요
  • 멧가비 2018/05/19 04:57 #

    데드풀 시리즈에서야 누군들 못 나오겠습니까마는ㅋㅋㅋ요지는, 울버린이 폭스 엑스맨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개근 중이라는 거예요. 차기작이 다크 피닉스인데, 거기서 개근 끝나겠죠.
  • Dannykim 2018/05/19 00:33 #

    저는 약간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2의 데자뷰가 느껴지더군요. 가족이 된 팀 플롯도 그러하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포기하면서 희생하는 장면들도 그러했지만 전작에서 잘먹혔던 것들을 약간의 변주만 거쳐 안전하게 안타만 친다는 느낌이 특히나 그랬어요. 전작이 9회말 이사만루 역전홈런 같았기에 더 아쉽게 느껴졌던걸까요. 하지만 도미노만큼은 안타뿐이던 데드풀 2에서 중반에 등판한 강견투수같아서 좋았어요.
  • 멧가비 2018/05/19 04:57 #

    야구 비유 좋네요, 바로 그겁니다 가오갤2. 제가 딱 그 영화에서 느꼈던 불만이었어요. 같은 패턴 유머에 조금 심심해진 주인공. 헌데 데드풀2는 워낙 독해서 그런가 아직은 약빨이 먹히더군요. 다음 편 까지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 lelelelele 2018/06/30 00:15 #

    그래도 폭스 엑스맨 시리즈에 있어서 데드풀의 가장 큰 존재의의중 하난, 역대 영화중에서 엑스맨 코스튬을 실사로 가장 이쁘게 뽑아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데이즈오브퓨처패스트의 좀 밋밋한 sf스타일의 현대적 슈트를 제외하면, 폭스 엑스맨 코스튬들은 항상 만화책들을 너무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왔어서요...
  • 멧가비 2018/06/30 08:56 #

    개인적으로는 만화책 속 디자인을 그대로 실사로 옮기는 게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확실히 브라이언 싱어 때부터 지나치게 만화 디자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은 있었던 게 맞죠. 그 자신이 만화 팬이면서도 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퍼스트 클래스의 의상 디자인을 가장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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