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10주년 재감상 - 인크레더블 헐크 The Incredible Hulk (2008) by 멧가비


이 영화의 묘한 매력은 내러티브의 구조에 있다. 그 어느 마블 영웅들보다 강력한 힘, 앞뒤 없이 들이밀고 깨부수는 우악스러운 파이팅 스타일을 가진 캐릭터가 바로 헐크인데, 정작 영화 속 헐크-브루스 배너는 "뒷걸음 치는" 도망자 신세라는 점에서 말이다. 헐크에 비하면 어린애 솜주먹이라 할 만한 다른 영웅 캐릭터들은 늘상 무언가를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활약한다는 점이 대비된다.


도망이라는 개념은 영화를 상징한다. 브루스 배너는 자신을 쫓는 군인들, 권력가의 비뚤어진 망상과 욕심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자신, 헐크라는 얼터 에고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서 마치 오이디푸스의 패러독스처럼, 헐크의 존재를 은폐하고자 추격하는 일이 되려 그 헐크를 자극해 깨워버리고 마는 것 역시 헐크라는 캐릭터에게 특화된 재미있는 모순이다.


어보미네이션-에밀 블론스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역사에 있어서도 꽤 희귀한 악당이다. 물질적인 욕심이나 무언가에 대한 신념, 감정적인 이유 같은 것 없이 그저 순수하게 호전적인 기질 하나만으로 스스로 괴물이 된 "전투광" 타입의 캐릭터는 1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블론스키 이후엔 없다. 눈에서 빔 나가고 공중 부양하고, 이딴 거 없이 깔끔하게 "힘만 존나 센" 헐크에게 어울리는 심플한 악당을 매칭시키려 한 나름대로의 센스가 엿 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차피 괴물들이 찢어진 바지만 입은 채로 물고 뜯고 싸울 건데 거기에 미사여구가 붙으면 뭘 하겠나.


기념비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본편의 말미에 토니 스타크 등장. 본편에선 삭제 되었지만 디비디판 엔딩엔 빙하에 갇힌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도 이스터에그로 숨어있다. 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로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크로스오버 등장한 순간이 담겨있다는 것. 지금은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대세 중 하나가 되어 다른 프랜차이즈 영화에서도 롤 모델로 삼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과감한 캐릭터 운용 방식이 시작된 영화인 셈이다.


에드워드 노튼도, 리브 타일러도, 영화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게 아사무사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선더볼트 로스'라는 희대의 씹새끼를 세계관에 남겨주었다. 이 영화에서와 [시빌 워], [인피니티 워]에서의 로스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무슨 씨발 어버이연합 전세계 총대장 같다.






연출 루이스 리테리어
각본 자크 펜, 에드워드 노튼

덧글

  • 더카니지 2018/06/03 01:11 #

    이안판 헐크보다 영상미, CG가 좀 뒤떨어져 아쉬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 멧가비 2018/06/05 00:55 #

    CG가요? 이안헐크 그 개 세마리 최악 아니었나요?
  • 잠본이 2018/06/04 00:36 #

    어버이연합 전세계 총대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딱이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포스21 2018/06/05 09:03 #

    이안의 헐크 도 나름 재밌었어요. 코믹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전환도 좋았고...
  • 멧가비 2018/06/10 09:44 #

    제 기준으로는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던 영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 영화가 없었더라면 헐크의 탄생을 MCU 쪽에서 좀 더 멋지게 다룰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 Dannykim 2018/07/06 13:52 #

    이 영화를 보거나 배너 박사가 할렘사태에 대해 종종 언급할때 문득 루크 케이지가 생각나곤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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