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재감상 -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1993) by 멧가비


비교적 현실적인 사이즈, 현실에 존재했던 괴수들이 활개치는 괴수물이자 동시에 재난물. 댐에 난 작은 구멍이 홍수를 일으키듯,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의 작은 구멍 하나가 만들 수 있는 재난을 영화는 살벌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공개 됐을 당시부터 과학 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경고는 현재도 유효하며 이 영화만큼 효과적으로 이를 말하는 작품도 이후에 드물다. 데니스 네드리의 컴퓨터에 붙어있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사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영화가 자본가와 노동 계급의 갈등을 암시하는 쪽에 무게를 싣는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공룡들에게 있어서의 재난이기도 하다. 종의 연속성을 마감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20세기에 다시 깨어나 전기 담장에 갇혀 어리둥절함을 느낄 조류의 조상님들. 그들에게는 원죄가 없다. [고지라]처럼 홀연히 나타나 깽판을 친 것도 아니고 50년대 B급 SF 영화들의 우주인처럼 침략 행위를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요, 고통받는 노동자 계급일 뿐이다.


영화는 그들이 인간의 자본주의적 탐욕과 매드 사이언티즘에 저항해 자신들의 본능과 생존권을 지키고 땅을 탈환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입부에 그랜트, 새틀러 박사가 브라키오 사우르스 및 호수에서 물을 마시는 초식 공룡들을 처음 목도하는 시퀀스에서의 평화롭고 아름답기 까지 한 무드는, 생명을 도구화하는 비윤리적 자본가 기질과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을 묘사하기 전 극적인 대비효과를 위함이다.


본능과 권리 주장을 논하는 노동 계급 메타포라는 점 때문에, 어릴 때는 그냥 우왕~공룡 나오는 영화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 내게 있어선 [블레이드 러너]의 적자에 다름 아니다. 레플리컨트들이 그러했듯이, 영화 속 공룡도 실존 공룡을 모방해 거의 비슷하게 구현된 피조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그들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블레이드 러너] 보다도, 본작과 같은 원작자가 연출 까지 한 [이색지대]의 변주에 더 가깝긴 하다.


존 해먼드는 "벼룩 서커스"로 어트랙션 비즈니스 경력을 시작한 인물. 그의 벼룩 서커스는 모터로 작동했을 뿐 실제가 아니었다. 해먼드는 환상이 아닌 실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야망의 결과물이 다른 종의 생존권을 제한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환상보다도 못한 실제가 아닌가. 동기가 뭐였든 자연을 거스르고 통제하려던 점은 명백, 자연의 벌은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결국 쥬라기 공원의 비극은 바벨탑 이야기의 변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성인이 되어 어느 시점 이후 동물원이라는 개념을 싫어하게 됐는데, 이 영화의 기억이 끼친 영향도 일부 있지 않을까 가끔 자문한다.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마이클 크라이튼, 데이빗 코엡
원작 마이클 크라이튼 (동명 소설, 1990)

핑백

  • 멧가비 :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Jurassic World: Fallen Kingdom (2018) 2018-06-10 11:04:21 #

    ... 전작 [쥬라기 월드]가 [쥬라기 공원]과 같은 구조로 이야기를 진행했듯, 이번 영화 역시 [잃어버린 세계]의 플롯을 답습하며 시작한다. 아니 그런 듯 했다. 일부 장면들은 오마주를 넘어 거의 그대 ... more

  • 멧가비 : 이색지대 Westworld (1973) 2018-11-04 13:57:46 #

    ... 하다. 또한 본작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은 여기서 아주 약간만 디테일하게 변주한 또 다른 소설로, 또 그것의 영화화로 크게 이름을 날렸으니 그게 바로 [쥬라기 공원] 되시겠다. 나름대로 문화적 파급력이 있었던 작품이라 하겠으나 사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공공기물은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사용하자 이거지. 연 ... more

덧글

  • 解明 2018/06/10 19:34 #

    독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멧가비 2018/06/10 21:33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