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10주년 재감상 - 앤트맨 Ant-Man (2015) by 멧가비


내가 아는 한 MCU 영화들은 어설프게 세련됨을 추구하지 않는다. 고전적이라면 고전적이고 낡았다면 낡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마블 세계관에 맞는 식으로 능숙하게 재해석, 이것이 그간 MCU 영화들이 노골적으로 세련미를 추구하지 않아서 오히려 세련되어 보이는 비결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이언맨 시리즈는 90년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들처럼 외국의 테러리스트들에 맞서는 이야기, 캡틴 아메리카 삼부작은 각각 2차대전 시대극, 냉전시대 첩보 스릴러 그리고 그리스 비극의 구조를 끌어들인다. 이어서 이 영화가 기대는 서브 포맷은 'size change'. 멀리는 리처드 매드슨 원작의 불길한 촌극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가 대표적으로 있고, 내 세대의 추억 속에는 [이너스페이스]와 [애들이 줄었어요]가 있다. 


놀라운 건, 이 영화가 [시빌 워]의 직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MCU 사상 최대의 비극을 다루는 영화의 바로 앞에 개미들과 동고동락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니. MCU가 영화를 제작하는 태도 중 좋은 태도 하나는, 사람으로 치면 자존감이 높다는 것. 마블 코믹스의 그 앤트맨을 데려다가 영화를 만들게 됐으면 당연히 개미가 나오는 게 맞지만, 한참 액션과 드라마로 끗발 오른 시리즈에서, 그리스 비극과 같은 파국을 보여주기 직전에 뻔뻔스럽게도 개미 남자의 소동극을 내놓는다는 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가 본인들의 영화를 상당히 진지하게 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드는 사람들부터가 개미 영화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게다가 마이클 더글라스가 나온다. 저쪽에서 이렇게 나와버리면 보는 관객도 비웃을 수가 없는 거다. 토마스 기차가 장난감 레일 위를 달리다가 자빠질 때 순간적이지만 긴장한 건 만드는 사람들의 진지함이라는 일종의 최면술에 홀린 것이다. 고도로 계산된 코미디에 당해 낼 재간 없다.


또한 MCU 시리즈 중 가족이라는 요소가 가장 부각되는 점도 인상깊다. 행크 핌과 스콧 랭은 당연히 혈연이 아니지만 각각 1대, 2대 앤트맨이라는 특수 관계 덕분에 일종의 유사부자 관계처럼 묘사된다. 행크에게는 거의 절연 직전인 딸이 있고, 반대로 스콧에게는 다정하지만 같이 살지 못하는 딸이 있다. 둘은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이 영화를 90년대에 나왔을 법한 범죄 코미디 장르 가족 영화 쯤으로 치환하면, 주인공에게는 범죄자 기질이 있어 가정을 잃었는데 사실 그 기질은 아이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쯤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그리고 행크와 대런 크로스의 관계는 [스타워즈]에서 차용한 흔적이 보인다. 엄한 스승과 타락한 옛 제자 그리고 싹수 있는 새 제자라는 구도에서 오비완-아나킨-루크 삼인방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오비완과 아나킨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설명되기 이전, 그러니까 프리퀄 삼부작보다 먼저로서는 [쿵후보이 친미]의 요센 도사-오우도-친미의 관계가 선배격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이 영화는 알고 보면 무협물의 인물 구도 역시 일부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연출 페이튼 리드
각본 조 코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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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막스 결투에서 토마스 기관차가 툭 하고 자빠지는 장면. 나는 이전에 이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웃기는 장면을 하나 본 일이 있는데, 바로 [커뮤니티] 209 에피소드에서다.


덧글

  • Dannykim 2018/06/20 20:28 #

    극을 만들어나갈때 아무리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무거운 이야기만 밀어붙이면 관객이 지치죠. 코메디는 그 완급 조절을 위한 완벽한 방법이고(트레지디 역시 마찬가지지만) 마블은 이제 하나의 극 뿐 아니라 더 큰 그림으로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듯 싶어요. DC워너의 높으신 분들을 그걸 모른다니까요.
  • 멧가비 2018/06/21 01:37 #

    단짠단짠을 영화 한 편이 아닌, 시리즈 단위로 멕이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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