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업라이징 Pacific Rim: Uprising (2018) by 멧가비


캐릭터 역할 배분이 문제다. '스크래퍼'는 예를 들면 [마징가 Z]의 보스 로보, [태권 브이]의 깡통 로봇, [쏠라 원.투.쓰리]의 쏠라 쓰리 같은 녀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메카계의 떠오르는 아이돌 [스타워즈] BB-8처럼 완그 좀 시원하게 팔아 보겠다고 야심차게 투입한 게 아니겠나. 어쨌든, 상시에 든든한 전력은 아니지만 결정적일 때 해내는 와일드 카드 겸 마스코트였어야 한다고.


그럼 마지막에 스크래퍼 타고 나타나서 활약하는 것도 아마라였어야 한다. 훈련소에서 퇴출 시키는 건 그걸 위한 거 아니었어? 갑자기 "예쁜" 중국 여자가 대뜸 타고 나타나는 건 뭔데. 그렇게 자랑하던 드론이나 보냈어야지 누나가 거기서 왜 나와.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운용하는 센스가 없다는 거다. 제이크랑 아마라를 마지막에 집시 댄저 파일럿으로 앉힌 것 부터가 말이다. 둘 사이에 친구 보다는 멀고 사제지간 보다는 가까운 파트너십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1편 리뷰 때도 했던 얘기지만 이 시리즈는 '드리프트'라는 설정 때문에 애초에 글렀다니까. 드리프트라는 게 그냥 존나 유에스비 연결하고 드래그하면 파일 복사되는 식이란 말이지. 캐릭터간에 이해하고 신뢰 쌓는 과정 자체를 통으로 생략해 버리는 게 바로 그 뻑킹 드리프트란 말이다. 드리프트라는 게 훈련을 통해서 강화되는 거고 그 과정을 공들여 보여주는 식으로 설정을 굴렸으면 좋을텐데, 왜 그걸 모를까.


게다가 드리프트고 나발이고 이후에 이렇다할 케미스트리도 보여주질 못 하고 있으며, 일단은 주인공인 제이크란 놈 부터가 캐릭터가 흐리멍텅하다. 나레이션 깔리면서 호부견자 탕아 컨셉이었던 첫 등장만은 좋다. 근데 그게 전부여서 문제. 그 설정 다신 안 써먹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시작한지 30분이 다 돼 가도록 아무런 활약이 없고 존재감 마저 없다. 예를 들어 [금옥만당]의 요걸 따거처럼, 현역에서 오래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재활훈련부터 시작한다! 같은 인간승리의 플롯 같은 거 없음. 그런 얘기 할 시간부터가 없다. 새로운 설정, 세계관 설명하기도 벅차더라. 1편도 아니고 2편에서 말이지. 보통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2편은 그런 거 다 건너뛰고 본론부터 뚜껑 열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니냐.


의미없는 대화 씬들이 계속된다. 어떻게 하면 예거를 한 번이라도 덜 보여줄까 궁리하는 영화 같다. 예거가 대낮에 움직이는 건 참 보기에 좋다만, 거기에 예산을 다 써버린 건가. 한 술 더 떠, 주인공이란 놈은 전쟁 싫어 징징, 잘 생긴 놈 싫어 징징, 누나 죽었쪄 징징. 버려진 땅에 살면서 스캐빈저 같은 생활을 한다는 설정도, 생각해보면 아마라랑 만나는 과정을 간편하게 해치워버리려는 목적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주력으로 미는 두 캐릭터를 만나게 하기 위해 없어도 무관한 설정을 무리하게 하나 쑤셔넣고선 다신 안 써먹는 게, 백번 양보해도 각본을 잘 썼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하겠다.



더럽게 재미없는 전반부가 그렇게 지나고 슬슬 "돈 들인 티 내기" 시작하는 후반부가 되면 오잉 이게 바로 덕후의 로망. 전대물 냄새 난다는 "혹평"이 있더라. 그런데 그럼 성공한 거잖아. 거대 로봇이랑 괴수가 싸우는데 전대물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게 오히려 어불성설이지.


웅장하고 묵직한 느낌의 메카계 서브 컬처 같은 게 애초에 있기는 했나. 이 시리즈를 "로망"이라 부르며 기다렸을 세대가 기억하고 있는 '토에이' 혹은 '선라이즈' 로봇들, 죄 다 가볍고 빠른 놈들 뿐이다. 그 시절 저패니메이션은 애초에 프레임을 적게 써서 느리면서도 무게감 있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첫 등장이라거나 하는 의미심장한 씬들 제외하면 언제나 경쾌한 스타카토의 움직임. 그냥 생김새가 원통형에 투박한 것들이 간혹 있었을 뿐이지. 밝고 빠르고 캐주얼한 슈퍼로봇. 7, 80년대 로봇물 덕후라는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거 보면서 자란 사람들일텐데.


오히려 무게감이 적당히 강조되는 건 실사 드라마인 슈퍼전대 시리즈에서다. 그 쪽은 현실의 배우가 무거운 소품 수트를 입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대물 같다고 까인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몸통 박치기. 집시 댄저의 그 앗쌀한 최종 필살기가 이 영화에서 제일 맘에 든다. 물론 옛날 로봇 애니메이션처럼 장검으로 V자 베기를 한다든지  따위의 뭔가 정교한 필살기로 깔롱 부렸어도 좋았겠지만, 그냥 존나 투박한 몸통 박치기로 마무리. 그 시절 다른 장르였던 고교 열혈물 등에서 경파한 주인공들이 박치기로 싸움 끝내곤 하던 클리셰를 연상시켜서 멋지다.


멋스럽긴 하지만 이래저래 전반적으로 답답한 전작과 달리, 분명하게 전반부와 후반부의 장단점이 나뉜다. 델 토로의 탐미주의가 배제됨으로써 영화 자체의 멋과 개성은 옅어졌지만, 가시성 좋고 캐주얼해진 점은 일장일단의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확실히 마지막에 알록달록한 예거들이 냉병기 쥐고 떼지어 있는 모습을 보면 전대물을 떠올릴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신용문객잔]이라든가, 아무튼 중국 반환 전 홍콩 무협물 전성기가 먼저 떠오르더라. 거기 까지 노린 거겠냐만. 아무튼, 로봇은 확실히 이번 영화가 더 "슈퍼 로봇"스럽지.








연출 스티븐 S. 드나이트
각본 스티븐 S. 드나이트, 에밀리 카마이클, 키라 스나더

덧글

  • 잠본이 2018/06/30 16:58 #

    그 누나 비중이 확 올라간 건 아무래도 역시 중국 자본이 들어가서가 아닐까 싶습니다...ㅠㅠ
    1편에서 싹을 다 잘라놨는데 이제와서 왜또 시작이냐라는걸 설명하느라 전반부를 다 잡아먹은게 아쉬운
  • 멧가비 2018/06/30 21:36 #

    자본을 넘어서 아예 제작사 자체가 중국 회사에 인수됐으니 "많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해합니만, 왜 "그렇게" 나오냐는 거예요. 메리가 주전자 뒤집어 쓰고 깡통로봇 행세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코드0freeblade 2018/07/03 11:58 #

    생각해보니 2편때는 로봇과 괴수의 전투가 조금 밋밋하긴 했네요 그래도 나름 납득 가능한게 훈련생이라 기량이 부족한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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