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2018) by 멧가비


영화든 드라마든 실사화 작품을 두고 원작과 비교하는 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거니와, 이가라시의 원작을 읽지도 않았으니 하시모토 아이 판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애초에 번듯한 실사 영화가 그것도 두 편으로 나온지가 5년도 채 안 됐는데 의도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원작"의 가장 좋은 점은 절제다. 도쿄 생활의 실패, 엄마의 가출 등등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배경 설정일 뿐. 현실에서도 가끔 예전 일들이 뜬금없이 머리를 스쳐가지만 그저 그랬었다는 것 뿐 거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주인공 이치코가 바삐 움직이는 손, 그 손에서 만들어지는 농작물과 음식에, 그 과정에 대단한 집중력이 부여된다. 주인공의 무심한 표정, 그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려고 숨죽여 관찰하게 만드는 엠씨스퀘어 같은 매력이 원작에 있다.


원작은 기본적으로 초현실적인 판타지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혼자 살면서도 적절한 식기에 음식을 에쁘게 담아 바른 자세로 먹는, 마치 누가 보고 있는 걸 의식하는 듯한 이치코의 생활 태도가 특히 그렇다. 이치코는 마치 요리의 정령이기라도 한 것처럼, 요리와 그 요리에 오를 식재료들에 대해서만 거의 이야기한다.


이제 김태리 판 얘기. 일단 영화 한 편에 사계절이 다 담긴다. 뭔가 많이 쳐냈단 소리다. 그런데 반토막 분량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혜원이 고향집에 내려오기 까지의 구체적인 정황들이 자세히도 소개된다. 취업 실패, 그리고 취업 실패가 연애 실패로 이어지는 연쇄작용. 혜원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이야기 까지 덤으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레퍼런스에 한국 삼포세대들의 고민이 불쑥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혜원은 금세 서울로 돌아갈 거라 공언하면서 가진 돈도 간당간당하다는 말을 흘린다. 일 년 농사 짓고 먹고 살 밑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플롯 자체에서 판타지성을 걷어낼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 까지만 봐도 김태리 판은 확실히 힐링물이라 부를 수가 없다.


거기 까진 좋다. 원작의 틀만을 빌려와 한국의 정서에 맞는 다른 이야기를 "잘" 한다면 좋지. 그런데 임용고시 떨어지고 낙향한 김태리는 밥 먹고 잠 자고 연애한다. 고향 친구 둘과의 애매모호한 삼각관계, 하지만 그나마 그 연애도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고 마무리도 없다.  재하에 대한 혜원의 감정이 정확히 뭐였는지 암시 조차 없으며 재하가 좋아하게 됐다는 상대방이 누군지도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앗싸리 농촌 로맨스로 밀고 나갈 것도 아니면서 은숙과 재하는 왜 그렇게 분량을 많이 잡아드셨나.


엄마 파트도 좀 이상한 게, 원작에선 엄마에 대해서 원래 알 수 없는 엉뚱한 사람이라는 단편적인 성격 묘사 쯤에서 그친다. 즉, 변명하지 않는다는 거지. 거기다가 대고 자아찾기니 뭐니 해봤자, 미성년 자식을 집에 혼자 두고 사라진 부모? 이거 그냥 무책임한 거다. 문소리라는 배우를 쓰고 다른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그 사실은 변하질 않는다. 변하지 않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려고 바등대니 캐릭터 묘사가 찝찝할 수 밖에.


특히 실망스러운 점. 일본판에서는 늘 잔잔하고 따뜻하다가 딱 한 순간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치코가 무심코 던진 훈수에 키코가 정색하는 장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과 뒤이은 화해 장면의 리얼함이 참 인상 깊었거든. 근데 이 영화는 그마저 이도 저도 아니게 무슨 청소년 성장드라마 수준으로 대충 해치운다. 단호박이니 고구마니 대체 뭔 소리야. 대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요약. 잘 빠진 귀농 쿡방 판타지도 아니고, 2010년대 한국 청춘들의 아픔을 헤아려주는 리얼리즘 일상물도 아닌 어정쩡한 현지화. 문소리가 부침개 부치면서 위에 가쓰오부시 뿌리길래 깜짝 놀랐다. 이 영화는 스스로가 어떤 영화인지 잘 알고 있잖아!







연출 임순례
각본 황성구
원작 이가라시 다이스케 (リトル・フォレスト, 2002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