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작 [앤트맨]은 두 쌍의 부녀, 그리고 한 쌍의 유사부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후속작, 딸들의 이야기. 호프, 가족을 완성하려는 딸. 에이바, 가족을 모두 잃고 죽어가는 딸. 그리고 캐시, 이런 딸 낳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장가 가겠다.
월트 디즈니와 마블 스튜디오의 시너지가 가장 좋은 시리즈다. MCU 영화들이 중심에든 곁다리에든 대체적으로 가족 이야기를 배치하고 진행하는 경향이 있지만, 앤트맨의 두 영화는 특히나 90년대 디즈니 가족 영화에 더욱 근접한다. 크리스마스에 개봉해도 어울릴 정도로.
디즈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 월트 디즈니 셀 애니메이션 최전성기의 작품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스코트라든가 감초 조연 캐릭터들이 주인공 이상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는 점. 그걸 이 영화가 그대로 재현한다. 주인공들은 할 일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밀어주고 인터벌에 코미디를 담당해주는 보안 회사 삼총사. 그 깔깔이들이 옆에서 뒤에서 웃음 안 비게 계속 딜 넣는 걸 보고 있으면, 아 맞다 이거 디즈니 영화 맞지 참,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어딘가 심심했던 1편에 비하면 괄목상대라 할 만하다. 영화 속에는 특유의 리듬감이 있는데, 차가 달려도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물건을 빼앗아도 오래 들고 있지 못하는, 리듬이 깨짐으로써 발생하는 리듬감. 하다 하다 갈매기 까지 끼어들잖아. 각본을 진짜 신나게 잘 쓴 거다. 자동차 추격 시퀀스는 [용형호제] 1편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세력이 뒤죽박죽 물고 물리는 소동극 플롯은 '미타니 코키'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따라한 것 같다는 게 아니라, 그 분야들에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이 생각날 정도로 아주 좋다는 뜻이다.
격투 액션 시퀀스들은 보통의 액션 영화들과 다른 느낌으로 좋다. 주인공 둘은 작아지고 적대자는 흘려낸다. 양 쪽 다 때리기 힘들게 생겨먹어 가지고선, 서로 휘두르는데 맞질 않고 섀도우 복싱만 줄창 한다. 어느 부분에서 피하고 어느 타이밍에 맞고, 설계를 기가 막히게 잘 짰다. 타격감이 없어서 멋진 액션이라니 세상에.
언젠가 포스팅으로 쓸까 하지만 전작의 '옐로 재킷'은 내가 MCU 사상 최악으로 꼽는 악당 캐릭터다. 괄목상대라 했다시피, 바로 그 다음 영화의 악역, 안타고니스트인 고스트는 MCU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맘에 든다. 플롯 구조상으로는 악당의 포지션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자신도 궁지에 몰린 절박한 신세인 점이 MCU 안에서는 유니크하다. 아버지와 관련한 복수심을 강조했더라면 '이반 반코'의 짝퉁이 됐을 것이며, 빌 포스터가 음흉한 흑막이었다면 고스트는 '버키'의 열화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모두 피해서 오로지 물리적인 생존이 목적인, 그저 위기에 빠진 제 3의 주인공으로 기능하게 한 점 놀랍다. 반해버렸다.
이번 영화에 (쉴드 출신인) 고스트가 등장함으로써 한 가지 씁쓸하게 된 점이 있다면, 영화판에서 "쉴드는 사라졌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영화가 됐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TV 뉴스를 통해 쉴드의 완전 부활이 선포된 게 꽤 오래 전인데도 말이다. 늘 알고는 있지만, 영화 쪽에서 드라마랑 선을 그을 때마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까지들 안 해도 되잖아.
연출 페이튼 리드
각본 폴 러드, 크리스 맥케너, 앤드루 배럴, 에릭 소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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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의 마지막 MCU 영화, 벌써 금단 현상이 오는 것 같다
덧글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ps
??? :데일리 플래닛이 어디죠? 저는 30년동안 양자역학을 연구해온 교수입니다.
인피니티워 개봉 이후 루소형제 인터뷰가 많이 풀렸던데, 영화 제작하면서 기존 작품 감독들이랑도 다 협엽하고 의논해서 각본가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무지 힘들었다고 그러던게 기억나더군요. 영화쪽만 해도 시리즈 다 갈무리하는 작업이 이리 힘들다면, 드라마쪽까지 세부적인 면에서 함께 하려면 아마 관계자들 머리 터져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샌 작품완성도는 그렇다쳐도, 홈커밍처럼 세계관 시간 설정 어긋난 거 까지 팬덤에서 다 잡아낼 정도니... 단순 시리즈물도 아닌 유니버스 실사화 작품 만든다는게 정말 빡쎈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편때만 하더라도 에드가 라이트의 그늘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으니 100% 온전히 페이튼리드감독의 완성품일수는 없었을텐데, 2편을 보니 확실히 1편도 거저 만들어진건 절대 아니었던거 같다고 느꼇어요. 그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결국 상업적으로 성공했는데... 페이튼 리드는 스튜디오랑 궁합이 좋은 감독 중 한명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고스트는 원래 아저씨스러운 인물이었던걸로 썬더볼츠 코믹스에서 봤던거 같은데, 영화에선 인상이 꽤나 달라져버렸네요. 거기다 능력도 본인 스스로 발동할수 있으니 만화보다 더 격이 높아진거 같기도 하고...
이해도 하고 당연하다고 봅니다. 영화 시리즈를 보는 관객들한테 드라마에 대한 사전 이해까지 바랄 수는 없으니 별개로 진행돼야죠. 하지만 안 해도 될 말 까지 굳이 해서 드라마 쪽 설정을 부정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에드거 라이트 영화들을 대부분 다 좋아해서 각각 대여섯 번씩은 봤는데, 솔직히 지금에 와서 다시 앤트맨 1편에 그 사람 흔적이 얼마나 남긴 남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페이튼 리드가 참 잘 하는구나 싶고, 오히려 1편도 온전히 리드가 다 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고요. 라이트보다 리드가 실력이 좋다기 보다는, 그냥 더 좋은 궁합인 것 같다는 거죠.
1편은 요즘 케이블채널에서 재방송을 돌려서 최근에 다시 봤는데, 옐로 재킷이 악해진건 ‘행크 핌과 같은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입자의 악영향 때문인지가 아직도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옐로 재킷은 뭐...어떻게 된 거든 뭐가 중요하겠어요. 옐로 재킷 따위...